[정치] 대중정당과 당내 민주주의, 그리고 혁명정당과 노동자계급


본문
오세중
21대 대선에서 여러 가지 많은 것들을 평가할 수 있겠지만, 대중정당과 당내 민주주의 관점에서, 그리고 사회변혁을 이끌 혁명정당과 노동자계급 대중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평가를 해보겠다.
1. ‘대중정당’에서 당내 민주주의는 가능한가?
21대 대선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 중의 하나는 국민의힘, 민주당, 진보당, 정의당 등에서 나타난 당 지도부 또는 기득권 세력과 일반 당원 사이의 갈등이다. 당원들의 정치의식과 참여의식이 높아지면서 당의 기득권 세력 또는 지도부와 충돌하는 현상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국민의힘’에서는 당내 경선을 통해 후보로 선출된 김문수 후보가 한덕수와의 단일화 문제로 지도부와 갈등을 겪자, 쌍권(권영세-권성동)으로 대표되는 지도부가 기존의 경선 결과를 독단적으로 파기하고 한덕수로 후보 교체를 시도하였다. 그런데 5월 10일 당원투표에서 대선 후보 교체 안건이 부결되었고, 결국 김문수가 국민의 힘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민주당의 이재명후보는 흙수저 출신으로 김대중, 노무현 계열이 아닌, 변방의 비주류에서 시작해서 당대표가 되었으며, 기존 민주당의 주류인 DJ 계열, 노무현-문재인 계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중적 지지를 기반으로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약 90%의 압도적 지지를 통해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진보당은 강성희 후보와 당내 경선까지 치르면서 김재연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였는데, 김재연 후보는 대선 후보등록 전날인 5월 9일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면서 사퇴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사퇴에 대해 당 지도부의 결정을 당원투표에서 부결시킨 국민의힘보다 못한, ‘정당 민주주의를 짓밟는 반민주적 만행’이라는 격렬한 비판을 당원들로부터 받았다.
정의당의 권영국 대표는 노동당, 녹색당 및 노동-시민운동 단체가 참여한 ‘사회대전환 연대회의’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이 되었다. 처음에 ‘사회대전환 연대회의’는 ‘가자, 평등으로’를 당명으로 제안하였지만, 정의당은 당원투표를 통해 당명을 ‘민주노동당’으로 결정하였다. ‘당원 투표’라는 형식적 절차를 거쳤지만, ‘사회대전환 연대회의’의 제안에 따라 당명을 바꾸는 절차를 진행한 것이며, 또한 그 결과는 ‘사회대전환 연대회의’ 제안으로 결정되지도 않았다. 그리고 선거 이후 ‘민주노동당’이라는 이름을 바꾸어야 하지만, 선거 과정에서 예상외의 큰 성과로 남은 ‘민주노동당’이라는 당명을 바꿀지는 의문이다.
‘대중정당’은 본질적으로 정권의 획득과 유지를 목적으로 하며, 그것을 위해 소수의 직업정치가의 집단이 당 운영의 실권을 장악하고 입후보자와 정책을 결정하는 단체이다. (참조: 의회, 정당 정치는 노동자계급의 대안인가?) 그런데 이번 대선에서는 당 지도부 또는 당내 기득권 집단의 결정이 당원 대중들에게 설득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당원 대중의 뜻에 따라 정당의 입후보자와 정책이 결정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한 당 지도부와 일반 당원의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 당원들에 대한 교육과 관리(?)를 좀 더 잘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2. 노동자 대중의 관점에서: 다양한 노동자 정당은 다양한 노동자 의식의 반영이다
정의당, 진보당, 노동당, 녹색당… 이러한 진보정당 또는 크고 작은 여러 정치조직은 각각 자신들의 철학적ㆍ정치사상을 기반으로 사회를 분석하고 노동자들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경쟁을 한다. 어떤 정당이나 정치조직은 ‘러시아혁명 방식의 혁명을 통해서 사회주의가 실현될 수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정당은 ‘지금의 시대에 노동자 혁명은 불가능하며, 의회 진출을 통해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그것을 통해 사회주의 정책을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노동자대중은 ‘정치·사상적, 역사적 관점’이 아닌 ‘실현 가능한 현실의 관점’으로 정당의 지지 여부를 판단한다. 따라서 일상적 시기에 ‘개량주의자’라고 비판받는 조직이 다수의 지지를 얻을 수도 있다. ‘개량주의자’들이 제시하는 정책은 대중들에게는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개량’이기 때문이다. 일반 대중들이 21대 대선에서 이재명 대통령을 선택한 것은 계엄 세력을 저지하기 위한, 그리고 당선 가능한 ‘현실적 선택’인 것이다.
노동자 대중의 관점에서 볼 때 각 정당은 자신들의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노동자 대중에게 지지를 호소하는 조직이다. 노동자 대중은 ‘실현 가능한 현실의 관점’에서 지지 정당을 선택한다. 노동자 대중에게 민주당은 계엄세력을 막기 위한 ‘현실적’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과학적 사회주의 관점에서 볼 때 민주당은 양의 탈을 쓴 자본가 정당이다. 또한 민주당은 심화되는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를 돌파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체제 변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혁명을 통해 노동자 민중의 뜻을 대변하는 대의기구(이하 ‘민중의회’라 한다)가 건설된다면, 민중 의회에는 다양한 정치적 이견이 존재할 것이다. 또한 지금보다 더 많은 정치·사상의 자유가 보장될 것이기에, 보다 많은 정당들이 존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혁명적 시기에 대중의 지지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정당은 민중의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정당이 무오류의 당으로서 혁명 이후에도 항상(!)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을까? 또는 항상 다수 대중의 지지를 유지할 수 있을까? 볼셰비키당을 이끌었던 레닌조차 혁명 이전에 항상 다수의 지지를 얻었던 것은 아니며, 볼셰비키당 또한 10월 혁명 이전에는 항상 소수파였다. 레닌은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며, 혁명정당 또한 전지전능한 당이 아닌 것이다.
지금의 국회는 ‘국민’들이 선출한 ‘국회의원’들로 구성이 되지만, ‘국회의원’들은 기본적으로 보수양당을 통해서만 국회의원이 될 수 있다. 즉, 지금의 ‘국회’는 모든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보수양당(자본가 정당)의 뜻을 대변하는 국회일 뿐이다. 그러나 민중의회는 노동자 민중의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대표들이며, 정치적인 조직이다. 즉,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의 결과물이다. 그 속에서 노동자 정당은 다양하고 불균등한 노동자 민중의 의식을 반영하는 정치조직이다. 따라서 민중의회 속에서 정당들은 다양한 토론을 통해 올바른 정책을 결정하기 위해 노력하고, 시행착오와 실패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혁명의 과정에서 다수의 지지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혁명정당 또한 그러한 정당 중의 하나이며, 노동자 민중 위에 군림하는 전지전능한 정당이 아닌 것이다.
3. 혁명정당의 관점에서: 혁명정당은 어떻게 대중정당이 될 수 있는가?
혁명정당은 과학적 사회주의 사상을 중심으로 자본가계급과 투쟁하는 조직이며, 한편으로는 대중투쟁을 조직하면서 대중적 지지를 받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적인 사상은 자본가계급의 사상이다. ‘일상적 시기’에 노동자 대중은 대다수가 자본가들의 사상으로 물들어 있다. ‘회사는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의식, ‘노사 상생’을 위해 노사가 협력해야 한다는 의식, ‘법’은 공정하고 공평하다는 의식,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라는 의식, ‘국회’는 국민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의식 등등… 심지어 투쟁하는 과정에서도 몸으로는 자본과 싸우고 있지만, 의식은 자본주의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혁명정당은 ‘일상적 시기’에 당원을 확대하는 ‘대중정당’의 방식이 아닌, 당의 지지자 그룹이나 지지자 조직을 확대하는 방식, 또는 당면 투쟁을 위한 연대 또는 공동투쟁의 방식을 통해 대중투쟁에 함께하고 이끌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혁명정당의 사상에 대해 충분히 교육받고 훈련받지 않은 사람을 당원으로 가입시킬 경우, 과학적 사회주의 사상과 많은 투쟁의 경험을 지닌 중앙 지도부와 일반 당원과의 괴리가 발생할 것이며, 이러한 괴리는 대중의 혁명적 투쟁을 이끌어 가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적 사상은 자본주의 사상이며, 일반 당원들 또한 대다수가 자본주의 의식을 극복하지 못한 상황에서 당 지도부와 의식적 편차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당의 ‘민주적’ 절차를 통한 지도부 선출이나 사업 방향은 개량주의적, 기회주의적으로 흘러갈 수 있다.
혁명정당의 지지자 그룹이나 조직은 당에 대한 조직적 의무와 권리, 책임이 없다. 그러한 지지자 그룹과 조직을 확대하는 방식을 통해 혁명정당은 정치, 사상적 원칙을 지키면서도 대중적 지지를 획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혁명정당은 노동조합, 시민단체, 농민단체 등 피지배 계급, 계층의 모든 조직 속에서 과학적 사회주의 사상을 확대하고, 노동자 민중을 조직화하여, 궁극적으로 노동자 민중의 권력 쟁취를 위해 활동해야 할 것이다.
투쟁의 고양기로 접어들 때 대중들은 투쟁의 경험 속에서 급격히 계급의식이 성장한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 대중이 점점 더 계급적으로 조직되고, 그리고 조직화가 전국적으로 확대될 때, 그리고 마침내 국가권력 장악이 ‘실현 가능한 현실’로 다가올 때, 계급 대중의 다수는 혁명정당을 지지할 것이며, 마침내 권력 장악을 위한 행동을 개시할 것이다. 이러한 시기 혁명정당이 적극적으로 노동자 대중을 당에 가입시키는 것은, 아니 노동자 대중이 적극적으로 혁명정당에 가입하는 것은 그들이 혁명정당의 사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혁명적 시기에 혁명정당이 다수 대중의 지지를 받는다고 하여 혁명정당이 곧 국가권력은 아니다. 혁명정당은 당의 확대 뿐 만 아니라, 노동자 민중의 투쟁을 조직하여 혁명정당의 슬로건이 광범위한 대중의 지지를 획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노동자 민중의 투쟁 지도부가 국가권력 장악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러시아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볼셰비키당은 초기에 짜르의 탄압 속에서 활동하기 위해 혁명적 전위정당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1917년 2월 혁명으로 임시정부가 수립되면서 정치사상의 자유가 확대되고,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슬로건이 대중의 지지를 얻으면서 대중정당으로 성장하였다. 그리하여 1917년 2월 혁명 기간에 2만 4,000명이었던 볼셰비키당원은 10월에 35만명으로 불어나 있었으며, 10월에 열린 그전까지 멘셰비키가 다수였던 소비에트대회에서 볼셰비키당이 다수의 지지를 얻으면서 혁명에 성공한 것이다.
4. ‘일상적 시기’에 혁명적 활동가들의 활동 방향은?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를 ‘노동자 정당의 건설’로만 보는 협소한 관점을 극복해야 한다. 단일 정당이든, 여러 개의 정당이든,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당이 성장, 발전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궁극적인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란 노동자계급이 입법, 사법, 행정 등 모든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것이다.
체제 변혁을 위해 활동하는 혁명적 활동가 또는 그들의 조직은 어떻게 활동할 것인가? 그들은 ‘일상적 시기’에 광범위한 대중의 지지를 획득하기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일상적 시기’는 ‘현실적 개량’을 목표로 하는 진보적 개혁 정당 또는 개량주의 정당에 대한 지지로 귀결되기 쉽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상적 시기’에 좌파활동가들이 중점적으로 조직하고 지지를 획득하기 위해 노력해야하는 대상은, 진보적 개혁정당이나 개량주의 정당의 한계를 느끼는 활동가들이다. 그들에게 체제 변혁의 필요성을 알리고, 함께 활동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조직하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사상’에 대한 전파만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현실의 투쟁에 함께하는 과정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혁명적 활동가들은 개량적 요구 투쟁을 적극적으로 조직하면서도 ‘개량주의자’들과는 ‘독립적으로’ 활동하면서, 대중이 투쟁의 경험 속에서 자본가들의 속성, 그리고 정부와 국가 기구의 계급적 본질을 파악하는 등 계급의식으로 조직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인간의 의식은 노동 속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발전하듯이, 노동자들의 계급의식 또한 투쟁 속에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 불균등하게 발전한다.
전쟁을 하려면 먼저 군사를 모집하여 훈련하고 군대의 힘을 키우는 것이다.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시기, 장소를 정해 그동안 훈련된 군대를 투입해야 한다. 혁명적 활동가들의 활동은 지금 당장의 승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계급전쟁을 준비하는 것이다. 혁명적 정세는 ‘의도적으로, 자의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으며 그것은 언제 어디서나 개별적인 정당과 전체 계급의 의지 및 지도와 무관한 정황의 필연적인 결과이다. 단 한 번의 승리를 위한, 아흔아홉 번의 실패 속에서 단련된 활동가들을 조직하는 것이 현 시기 혁명적 활동가들의 활동 방향이다!
댓글목록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