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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정상회담] 흡혈귀 계약서에 노동계급의 서명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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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신문
2025-09-01 20:28 25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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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8.25(현지시간) 백안관에서 한미 정상회담




 호주 교민모임 [블랙와인 in 멜번


최근 한미정상회담 이후 대통령실은 미국에 3,500억 달러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것과 별도로, 한국 기업들이 1,500억 달러의 직접투자(FDI)를 약속했다고 밝혔다. 합치면 5,000억 달러, 한화로 약 700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규모다. 문제는 이 투자가 한국 경제를 희생한 채 미국자본과 제국주의자들을 위한 ‘몰빵 투자’라는 점이다.


삼성전자가 국내에서 대체·신규 투자를 모두 합쳐 연간 50조 원, 현대기아차 그룹이 12조 원 규모를 투자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중 신규 투자는 삼성 10조 원, 현대기아차 2~3조 원 수준에 불과하다. 그런데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만 1,500억 달러(약250조 원)를 추가로 투자한다는 것은 사실상 국내 투자를 포기한다는 선언이나 다름 없다. 기업들의 투자 여력은 한정돼 있고, 미국 투자 규모가 커지면 국내 일자리 창출과 산업 발전은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번 협상은 한국에 실질적 이득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이미 FTA로 관세 혜택을 누리던 한국이 15% 관세를 다시 떠 안았고, 일본·EU에 비해 경제 규모가 훨씬 작은 한국이 오히려 더 많은 액수를 미국에 바치게 되었다. 유럽은 7,500억 달러, 일본은 5000억 달러 수준인데, 한국은 3,500억 달러 에다 별도 투자 1,500억 달러까지 약속했으니, 단순 비교만 해도 불평등이 극명하다.


그럼에도 대통령실은 마치 ‘성과’인 듯 이를 포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성과가 아니라 국내 경제를 파괴하고 청년 일자리를 빼앗는 굴욕적 투자 협정이다. 성장률 1%대의 저성장 국면에서 신규 고용은 줄고 청년 취업 난은 심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수백조 원을 해외로 빼돌리는 것은, 국민을 위한 경제정책이 아니라 재벌과 초국적 자본을 위한 하수인 노릇일 뿐이다.


며칠 전, 대통령 트럼프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평택 미군기지를 미국 땅이라 우겼다

한때 일본이 독도를 탐 냈듯, 오늘의 제국은 공짜 점령지를 자기 소유물처럼 취급한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반박 한마디 못 했다. 18조 원을 들여 지은 기지, 임대료 한 푼 못 받는 땅, 이제는 ‘동맹’의 이름으로 소유권까지 뺏긴다. 이것이 외교인가, 아니면 자본과 제국주의에 바치는 봉건적 공납인가.


한미 관세협상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은 이미 3500억 달러 투자, 1000억 달러 에너지 수입을 약속했다. 거기에 1500억 달러가 추가된 것이다. 호혜라고 포장했지만, 웃은 쪽은 초국적 자본과 한국 재벌이었다. 웃음 뒤에서 피눈물을 흘리는 쪽은 언제나 노동계급이다. 고용은 불안정해지고, 물가는 치솟는다. 통계는 집값을 빼놓고 계산해 ‘착시 인플레이션’을 만든다. 최저 임금인상률은 그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데, 장바구니는 이미 비명을 지르고, 교통비와 전기세는 생활비를 삼켜버린다. 국부는 미국 기업의 주머니로 흘러가고, 국내 노동자는 해고와 비정규직 전환으로 떠밀린다.



국경이 아니라 계급이 문제다


8월 15일, 광복절이었다. 그러나 해방된 건 민중이 아니었다. 

풀려난 건 부패한 정치인과 재벌이었다. 감옥은 열렸으나, 노동자의 삶을 옥죄는 족쇄는 여전히 단단했다. “광복”이라는 말은 민족의 언어였지만, 실제로는 계급의 억압이 풀리지 않았다.

국무총리 김민석은 “Make America Great Again은 with Korea일 때 가능하다”고 말했다. 대통령 이재명은 더 나아가 "미국은 피스 메이커 하라. 우리가 페이스 메이커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국가 대 국가의 협력”이 아니라, 자본 대노동의 착취일 뿐이다. 문제는 ‘한국 대 미국’이 아니라 ‘재벌·제국주의 자본 대 노동계급’이라는 계급적 전선이다.우리는 국경이 아니라 계급을 기준으로 본다. 한국의 노동자는 미국·일본·중국의 노동자와 다르지 않다. 반대로 한국의 재벌과 미국의 초국적자본은 한편이 되어 노동자를 수탈한다. 오늘의 전쟁과 경제 위기는 민족 갈등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뿌리는 자본의 위기이며, 그 피해는 전 세계 노동자에게 전가된다.



세계적 자본의 위기, 피로 쓰인 증명서


지금의 위기는 노동자만의 위기가 아니다. 그것은 전 세계적 차원의 자본의 위기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무기 시장의 카탈로그가 되었고, 팔레스타인에서는 인종청소가 ‘안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다. 자본은 학살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인간의 생명은 장부에서 지워졌고, 대신 총알 값과 주가 그래프만 남았다. 인간성을 상실한 그 풍경은 자본주의의 불안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더 많은 전쟁, 더 큰 피바람 없이는 연명할 수 없는 체제. 


한국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대미 투자와 군사동맹 강화는 바로 이 위기의 일부, 그 복제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금 필요한 질문은 “우리가 독립국인가”가 아니라 “누가 이 체제를 지탱하는가”이다. 답은 명확하다. 노동자다. 노동자가 생산을 멈추면 공장도, 기지도, 전쟁도 멈춘다. 민족의 이름이 아니라 계급의 힘이 이 체제를 흔들 수 있다.



노동계급의 대안은 무엇인가


첫째, 경제의 중심을 재벌과 자본이 아닌 노동계급으로 옮겨야 한다. 

역사 이래 이 같은 수탈과 조공은 없었다. 노동계급의 피땀을 미국제국주의자들에 바칠 게 아니라 무상 의료, 주거, 교육에 투자해야 한다. 청년에게는 안전한 일자리,서민에게는 집 걱정 없는 삶을 보장해야 한다. 전략 산업은 재벌의 사익이 아니라 노동자의 생존권을 지키는 공적 통제로 전환돼야 한다.


둘째, 굴욕적 동맹이 아니라 자주적 평화를 선택해야 한다. 

미·중 패권 경쟁의 총알받이가 될 이유가 없다. 한반도는 전쟁의 전초기지가 아니라 평화의 중심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 평화는 국익의 계산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국제적 연대에서 가능하다.


셋째, 노동계급이 직접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 

수백조 원의 투자, 수백억 달러의 계약이 국민 동의 없이 이뤄지는 현실은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거리에서, 일터에서, 생활 공동체에서 노동자가 직접 권력을 장악할 때만 변화는 온다. 풀뿌리에 기초한 직접민주주의로 국가 권력을 대체해야 한다.


넷째, 계급적 연대와 국제주의다. 

MAGA와 ‘위드 코리아’라는 이중창은 자본의 합창일 뿐이다. 국가는 우리를 갈라 놓지만, 계급은 우리를 묶는다. 한국의 노동자는 미국·일본·중국의 노동자와 손잡아야 한다. 전쟁과 차별, 착취에 맞서 싸우는 것은 국적의 문제가 아니라 계급의 문제다. 노동자·이주노동자·여성·청년·퀴어 모두가 함께 설 때, 비로소 진정한 해방이 가능하다.


광복절은 지났지만, 해방은 오지 않았다. 감옥에서 재벌이 풀려나는 동안 노동자는 여전히 착취의  쇠사슬에 묶여 있다. 그러나 역사는 증언한다. 제국주의와 자본의 무도한 협상도, 전쟁으로 포장된 수탈도 노동자의 연대와 투쟁 앞에서는 무너졌다.


흡혈귀 계약서에 노동자의 서명은 없었다. 그러니 이제 노동자가 투쟁의 새로운 역사로 써 내려가야 한다.우리는 이러한 싸움에 언제나 연대하며 지지할 것이다.


2025. 8. 28. 블랙와인IN맬번

https://blackwinemelbourne.tistory.com/m/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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