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길 (편집위원)
달러 지배 체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 경제의 세계 경제에 대한 의존성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미국 경제가 세계 경제에서 25% 정도를 차지한다는 단순한 양적 규모만이 아니다. 미국 경제는 세계 경제 체제에 질적인 구조에서 의존되어 있다. 이는 미국이 의존하고 있는 세계 경제의 성장과 발전이 미국 경제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일국의 혁명이 세계 혁명으로 성장 전화할 수 있는 고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부에서 미국의 폭력성을 강조하기 위해 미국 경제가 폐쇄성을 갖는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달러 지배 체제의 폭력성과 브릭스 화폐 동맹”에서 송종운은 달러 지배 체제의 폭력성이 미국 경제의 폐쇄성에 근거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송종운은 폐쇄 경제를 영향을 받기보다는 영향을 주는 경제로 규정한다. 미국은 영향을 받는 나라가 아니라 영향을 주는 나라로 세계 유일의 폐쇄 경제라고 한다. 폐쇄 경제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규정은 다분히 미국 경제의 폭력성을 폭로하고자 한 의도임은 인정할 수 있겠다. 그러나 미국의 달러 지배 체제가 다른 나라 경제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영향을 준다는 주장은 사실에도 맞지 않고 달러 지배 체제의 폭력성을 설명하는 근거일 수도 없다.
미국 경제, 특히 달러 지배 체제는 세계 경제에 철저하게 의존되어 있으며 세계 경제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받는 체제이고, 세계 경제의 기반 위해 구축되어 있다. 이러한 달러 지배 체제의 세계 경제에의 의존성으로 인해 트럼프 정부가 추구하는 소위 고립주의는 최소한 달러 지배 체제에서는 실현 불가능하다는 점을 의미한다.
1. 미국 경제의 세계 경제에 대한 의존성
OECD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미국의 GNI(국민총소득) 대비 수출입 비율은 각각 12%와 16%로, 무역 수지 비율은 -4%를 기록했다. 미국의 GNI 대비 수출 비율(12%)은 독일(47%), 중국(20%) 등 주요 수출 주도형 경제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이는 미국 경제가 내수 중심적이며, 수출보다는 소비와 써비스업에 더 의존하고 있음을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수출입 비율은 미국이 내수 시장에 크게 의존하고 있지만, 수출입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점을 보여 준다. 특히 공급망의 핵심 품목의 경우(희토류, 의약품, 전자 부품 등)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품목들은 미국의 핵심 산업 및 안보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미국 경제가 전체적으로 보면 내수 중심이기는 하지만 제조업에서는 세계 경제 특히 중국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다.
그리고 송종운은 “미국 소비자 지출의 총 88.5%는 미국산 상품에 대한 지출이며, 지출의 약 3분의 2를 차지하는 서비스가 주로 현지에서 생산된다”고 지적하며 써비스의 현지 생산을 폐쇄 경제의 주요한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써비스 산업은 잉여가치를 생산하지 못하고 단지 잉여가치의 분배에 참여하는 산업이다. 따라서 써비스 산업의 비중이 높은 것은 잉여가치의 착취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미국 이외의 국가, 주로 제조업 중심 국가에서 생산한 잉여가치를 전제로 하는 것으로 송종운의 주장과는 반대로 오히려 세계 경제에 대한 의존성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미국 달러가 세계 기축 통화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어, 많은 국가들이 달러화 자산을 외환 보유고로 보유하고 있다. 미국의 지속적인 경상 수지 적자는 다른 국가들의 외환 보유고 증가로 이어지며, 이는 다시 미국 국채에 대한 수요로 연결되고 있다. 미국 국채 발행액의 1/3 정도는 외국인이 보유하고 있다. 미국의 국채 증가는 세계 외환 보유고 증가와 연관되어 있으며, 이는 글로벌 금융 씨스템의 불균형과 상호 의존성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미국 국채뿐만 아니라 미국 주식도 외국인 보유가 2023년 기준 10조 달러로 추정되고 있으며, 기업 채권도 4조 달러로 추정된다. 이외 부동산에 2조 달러, 펀드 등 기타 금융 자산에 약 12조 달러 정도가 외국인이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략적으로 미국 내 외국인 자산 보유 규모는 48조 달러 정도로 추정된다. 주요 외국인 투자자들은 유로국가, 산유국, 아시아 등의 경상 수지 흑자국들이다. 이러한 외국인 투자는 미국 정부와 기업이 자금을 조달하는 원천이며, 미국 경제 성장과 금융 안정성의 근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반대로 미국 경제 불안정성의 요인이 된다. 외국인들이 대규모로 미국 자산을 매도할 경우 미국 금융 씨스템은 붕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달러 패권의 본질
미국 패권은, 군사적, 기술적 우위와 달러의 국제 기축 통화 지위를 이용하여, 글로벌 금융 체인을 통제하는 데 있다. 군사적, 기술적 측면을 사상하면 미국 패권은 달러 패권으로 글로벌 금융 체인을 통제 관리하는 능력이다. 이는 곧 세계가 생산한 잉여가치를 미국으로 빨아들이는 약탈 체제이다. 이 약탈 체제는 금융 체인을 이용하여 글로벌 자본을 흡수하는 것으로 달러 표시 부채의 증가로 나타난다. 미국은 장기간 막대한 경상 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이는 주로 상품 무역 적자로 구성된다. 이러한 적자를 메우기 위해 미국은 금융 계정의 부채, 즉 금융 자산 및 은행 예금 순부채에 의존한다. 미국 경제의 성장은 곧 부채의 증가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부채 기반 달러 패권 체제는 생산과 소비의 불균형, 즉 무역 불균형을 확대 재생산하는 체제이다. 달러 지배 체제, 즉 글로벌 금융 체인은 달러 환류 씨스템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소위 패트로 달러는 석유로 달러 발행을 보증하는 것이 아니라 산유국이 미국 국채를 매입하여 미국 부채를 통한 약탈을 지원하는 것이다. 즉 미국은 차입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석유 가격 결정권을 통제하는 것이지 석유로 달러의 지불 능력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그 근거로 유가와 달러 가치의 괴리를 들 수 있겠다. 원유가 달러의 지불 능력을 보증하는 담보물이라면 유가의 상승은 달러 가치의 상승을 의미하게 된다. 그러나 2000년 이후 석유 가격이 상승했지만 달러 가치는 유가 강세를 따라가지 못했다. 2005~2008년 석유 가격이 다시 급등했지만 달러 지수는 상승하지 않고 오히려 하락했다. 이는 2000년 이후 달러 부채 공급이 더 이상 석유 수출국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낸다. 2000년 이후 달러 부채 공급은 더 이상 석유 수출국에 의존하지 않고 중국을 선두로 하는 아시아 경제로 이동하였다. 달러는 중국 경제를 선두로 하는 아시아라는 새로운 공급자를 찾은 것이다.
달러 지배 체제의 본질은 미국이 군사적, 기술적 우위와 달러의 국제 유통 통화 지위를 이용하여 월스트리트를 통해 글로벌 금융 체인을 통제하고 글로벌 금융 자본을 흡수하여 미국의 부채를 통한 약탈을 수행하는 달러 부채 체인이다. 미국이 군사력과 과학 기술력을 발전시키는 것도 달러 부채 체인의 안정성에 달려 있으며 이것이 달러 패권이다. 미국의 힘은 부채로 쌓아 올린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달러의 생명선은 미국의 국채 발행의 원활화에 있다.
달러는 미국의 국공채를 담보로 발행된다. 이런 의미에서 달러는 의제 화폐라 할 수 있다. 즉 부채 화폐이다. 채무 증권을 담보로 발행되는 달러는 발권 차익(주조세)은 없다고 할 수 있다. 지불 의무가 없는 발권 차익과 달리 달러 발행은 지불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달러 패권은 미국의 부채를 떠받치는 미국 이외의 국가에 의존하는 체제이고 이는 주로 글로벌 흑자국들과 국제독점자본이다. 세계 외환 보유고에서 달러 비중의 축소는 그 자체로 달러 체제의 지속 가능성을 의심하게 하는 징후이며 그 임계점(달러 지불 능력의 불신)이 앞당겨지고 있다. 이는 달러를 정치 군사적 무기화한 미국이 자초한 후과이기도 하다.
3. 미국은 부채로 흥하고 부채로 망한다
2000년부터 미국의 무역 적자가 빠르게 증가하여 미국의 국제 수지 능력이 국제 금융 자본 유입에 심각하게 의존하게 되었다. 2023년 기준으로 미국의 국제 투자 포지션(IIP: International Investment Position)에 따르면 미국 내 외국인의 부채 및 지분 총자산은 48조 달러로 추정되며, 같은 해 미국 GDP 26조에 비해 약 1.85배에 달한다. 이는 미국이 26조 달러의 GDP를 창출하는 데 필요한 자금 중 48조 달러가 국제 금융 자본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이 48조 달러의 국제 자본 대부분은 미국 채권 시장과 주식 시장, 그리고 금융 파생 상품에 투자되어 있다는 점이다. 금융 시장의 특징은 매수 및 매도가 편리하다는 것이다(일반적으로 미국 시장의 유동성이 좋다고 함). 이 48조 달러의 국제독점 금융 자본은 미국의 유동 부채와 같다. 미국은 유동 부채 자금 조달을 통해 국가 전체의 경제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을 대기업으로 보면, 기업이 단기 부채를 빌려 장기 투자를 하고 매년 손실을 보고 매년 현금 흐름이 마이너스이며 자산보다 부채가 18조 달러(2023년 기준 순국제 투자 포지션: 약 -18조 달러) 많은 것과 같다. 금융 시장의 유동성은 양날의 검과 같아서 유동성이 고갈되면 금융 시장은 자금 체인이 단절되어 금융 공황을 야기할 수 있다.
오늘날 미국은 정부의 지원하에 국제 금융 독점자본이 활동하는 주 무대이다. 겉으로 보기에 미국은 전 세계의 돈으로 전 세계에 투자하고 금융 게임을 성공적으로 진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미국 금융 시장의 자금 체인이 끊어지면 국제 금융 독점자본은 이익을 추구하고 위험을 피하는 속성상 미국의 국가 금융 안보를 고려하지 않고 황급히 도망칠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부채 규모는 임계점에 다가가고 있다. 물론 미 재무부와 연준이 필사적으로 달러 체제의 붕괴를 막고자 하겠지만, 달러 체제의 불균형 체제가 지속 불가능한 것은 분명하다. 다만 그 붕괴 시기가 언제인가만 문제일 뿐이다. 붕괴 시기는 국제독점자본이 새로운 숙주를 만들어 낸 다음이 될 것이고, 그 숙주는 브릭스 통화가 될 것이다.
경상 수지 적자로 인한 금융 부채는 경상 수지 흑자를 통해서만 상환할 수 있다. 적자 구멍을 국제 자본이 메우면, 국가 금융 안전은 국제독점자본에 인질로 잡히게 된다. 미국이 국가 금융 안보를 보장하려면 장기 무역 적자 상황을 반전시키고 점차적으로 무역 재균형을 실현하여 흑자를 유지해야 외채를 상환하고 국가 금융 안보를 확보할 수 있다. 국가는 금융 안보를 국제독점자본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미국조차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달러는 국제 준비 통화로서, 달러 지급 능력 위기는 이미 글로벌 금융 안정성을 위협하는 큰 문제가 되고 있다. 달러를 숙주로 한 국제독점자본은 달러의 위기와 함께 전환기적 위기(국제독점자본주의 체제의 전환)에 봉착하고 있다. 트럼프가 전 세계의 자본을 끌어들여, 국제독점자본의 위기로부터 미국의 금융과 산업을 보호해 내려고 하지만 성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4. 새로운 국제 통화 체제의 방향
새로운 국제 통화 체제로 브릭스 통화가 논의되고 있다. 송종운이 지적한 바와 같이 새로운 국제 통화 체제를 주도하는 브릭스 국가들이 중상주의적 행보를 보인다면 브릭스 통화는 달러를 대체할 수 없고, 설령 대체한다고 해도 또 다른 달러 약탈 체제가 될 것이다.
달러 지배 체제의 문제점은 기술적 측면에서 본다면 무역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다. 국가 간 무역 균형이 달성되지 않으면 진정한 무역 상환이 이루어질 수 없다. 무역 불균형으로 인한 차액은 필연적으로 장기 무역 흑자국이 장기 무역 적자국에 대해 가지는 채권으로 전환되고 이는 지속 가능하지 않고 결국 전쟁 등 파국으로 끝나게 된다.
달러 이후 시대의 새로운 국제 통화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무역 불균형의 기술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향과 경로를 찾아야 한다.
그 방향과 경로는 국제 통화와 국가 통화를 완전히 분리하는 새로운 통화 체제가 열쇠가 될 것이다.
경제 세계화는 국가의 재정적 독립성을 침해했다. 각국의 독립적인 통화와 재정을 가지고 있지만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라는 세계화 때문에 각국은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허용하는 한 자주적인 재정 통화정책을 시행할 수 없다. 여기서 국제독점자본과 주권 국가 간 주요 모순이 생겨난다. 새로운 국제 통화 체제는 이 모순을 해결하는 방향에서 기획되어야 한다. 국제 통화와 국가 통화의 완전한 분리가 그 방향이 될 것이다.
달러 체제의 모순은 국가 통화가 국제 통화로 기능하면서 나타난 기술적 문제에 기초한다. 따라서 새로운 국제 통화는 국가 통화여서는 안 된다. 유로화는 또 다른 예이다. 유로존 국가는 재정적으로 독립되어 있지만 단일 통화를 운용한다. 이런 통화 체제로는 독일과 여타 유로존 국가 간의 무역 불균형을 해소할 길이 없어진다. 이는 결국 국제 자본과 주권 국가 간 모순으로 드러나고 국가와 민족 간 갈등을 부추기는 경제적 토대가 된다.
또 다른 방향은 글로벌 흑자국이 국제 자본을 관리 통제하는 것이다. 전 세계 주요 흑자국(외환 보유국)들이 외환 보유고를 출자하여 국제 중앙은행을 공동 설립하고 디지털 통화화하여 공동으로 관리하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단기 차익을 노리는 국제 투기 자본을 억제하는 것과 함께 채무국이 금융 자본을 관리하는 모순을 극복하는 방향이다. 국제 중앙은행은 새로운 국제 통화를 발행하지 않고 흑자로 인한 외환 보유고를 출자금으로 하여 상업은행 방식으로 운영하여야 한다. 국제 중앙은행은 적자국의 실물 경제에 투자하여 적자국의 부채 상환을 가능하게 하여야 한다.
브릭스 통화의 방향이 어디로 나아갈지는 불명확하지만 위와 같은 방향으로 새로운 통화 체제를 모색하지 않는다면 달러 체제를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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