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의 칼끝은 노동을 향하고, 국고는 자본에게 흘러간다] ― 잊혀진 이름, 끝나지 않은 싸움
본문
조선아 (호주 교민)
한국 사회의 기억은 빠르고 잔인하다.
단 한 번의 뉴스, 몇 초의 화면으로 요약된 뒤, 모든 투쟁은 ‘과거형’이 된다.
그러나 어떤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2년 전, 기아자동차 해고노동자 박미희동지가 10년 넘는 투쟁 끝에 합의를 쟁취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질긴 놈이 승리한다. 한 여성 노동자의 외롭지만 찬란한 승리’라고 말했다.
그녀의 싸움은 불법해고의 상징이었고, 재벌 권력이 노동자를 어떻게 짓밟는지 보여주는 살아 있는 증거였다.
그러나 합의의 기쁨은 짧았다.
승리의 문턱을 넘자마자, 법정의 문이 다시 열렸다.
그녀와 함께 싸웠던 이들에게 남은 것은 ‘응징의 절차’였다.
서초구청과 자본은 그들을 법정에 세웠다.
그 이유는 ‘질서를 어겼다’는 것이었다.
그 질서란 누구의 질서인가.
노동자의 생존과 존엄을 위한 질서가 아니라, 자본의 이윤과 행정권력의 안정을 위한 질서였다.
며칠 전, 11월 7일, 서울의 항소심 법정은 결국 기아자동차와 서초구청의 손을 들어주었다.
법정은 박미희 동지와 세명의 연대자들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그 판결은 단지 개인 몇 명의 형사처벌이 아니라, 이 사회가 자본의 이해를 위해 법의 공정성을 포기한 선언문이었다.
<법정의 냉기, 권력의 방향>
1심은 이미 예정된 패배였다.
법정의 공기는 싸늘했고, 판결문은 ‘법에 따라’라는 기계적 문장을 반복했다.
그러나 그 ‘법’이란 자본이 써내려간 언어였다.
법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그것은 힘의 배분을 반영한다.
한국의 법은 여전히 자본과 권력의 균형 위에 세워져 있다.
2심에서는 잠시 변화의 기류가 느껴졌다.
윤석열 퇴진 투쟁 이후, 거리의 분노가 법정의 공기를 흔들었다.
판사의 어조는 누그러졌고, 피고인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미묘한 동요가 있었다.
그러나 판결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질서 유지”를 내세워 행정권력의 폭력을 합리화했고, 자본의 폭력에는 침묵했다.
그 결과, 10년 넘게 싸워온 해고노동자와 그 연대자들은 또다시 ‘법의 이름으로’ 유죄판결, 패배가 선언되었다.
이 사건은 단지 한 해고자와 그에 연대한 이들의 문제만이 아니다.
한국 사회가 어떤 쪽으로 기울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자본은 국가의 우산 아래에서 더욱 안전해지고, 노동은 사회의 그늘 속에서 점점 사라져간다.
<3500억 달러, 국가의 진짜 주인>
같은 시기, 정부는 미국에 3500억 달러를 제공하기로 했다.
공식적인 이유는 ‘한국 기업의 대미 관세 인하’였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그 돈은 삼성과 현대차 같은 대기업이 미국 시장에서 더 적은 관세를 내기 위해, 국가가 대신 치르는 조공금이었다.
그 3500억 달러는 단순한 외교자금이 아니다.
그것은 이 체제의 방향을 명확히 보여주는 지표다.
노동자의 복지에는 한 푼도 인색한 정부가, 재벌의 이윤을 위해서는 국고를 통째로 내준다.
그 돈이면 수십만 명의 청년이 주거 불안을 벗어날 수 있고,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으며,
병원과 학교의 공공서비스를 강화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는 자본을 선택했다.
이것이 한국 자본주의의 본질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가 ‘혁신성장’을 내세워 재벌 중심 산업정책을 유지했듯,
이재명 정부 또한 ‘경제안정’과 ‘미국 시장 방어’를 명분으로 같은 길을 걷고 있다.
국가는 점점 더 대기업의 외교사무소로 전락하고 있다.
국민의 세금은 공공의 삶을 지탱하기 위해 쓰이지 않는다.
그 세금은 ‘국가를 경영하는 자본가’들의 주머니를 채우는 연료로 흘러들어간다.
<법의 중립은 신화다>
법은 권력의 도구다.
서초구청이 노동자들의 항의를 막기 위해 비상계단을 봉쇄하고, 엘리베이터를 잠그며, CCTV로 감시한 행위는 아무 문제로 다뤄지지 않았다.
대신 항의에 나선 사람들이 ‘질서 위반’으로 처벌받았다.
법은 폭력을 저지른 자가 아니라, 폭력에 저항한 자를 처벌한다.
이것이 이 체제의 작동 방식이다.
법은 국가 폭력을 합리화하고, 자본의 폭력을 제도화한다.
노동자가 “인간의 존엄이 무시되는 현실에 항의했다”고 말하면,
법원은 “절차를 어겼다”고 답한다.
이 절차주의는 정의가 아니라 복종의 문법이다.
법은 공정하지 않다.
그것은 계급의 언어로 말한다.
노동의 분노가 폭력으로 기록될 때, 자본의 폭력은 ‘정상적 경영활동’으로 포장된다.
<자본의 언어, 침묵의 대가>
기아자동차는 불법해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법을 무기로 삼았다.
행정기관과 경찰, 검찰은 그 법을 ‘집행’했다.
그러나 그 집행은 중립이 아니라, 한쪽 편의 폭력적 봉사였다.
이 구조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노골적으로 강화되었다.
그때, 국가는 노동자를 모든 책임의 담보물로 바쳤다.
근로자파견법, 정리해고제등 국가는 기업의 생존을 위해, 노동자의 삶을 희생하도록 하는 노골적인 전환을 시작했다.
오늘날의 3500억 달러는 그 구조의 완성판이다.
국가는 자본의 생존을 위해 세금을 동원하고,
법은 그 자본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사람들을 처벌한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체제의 실체다.
<패배의 의미, 다시 시작되는 싸움>
이번 항소심의 판결은 패배처럼 보인다.
그러나 진정한 패배는 아니다.
이 판결은 오히려 체제의 민낯을 드러낸 증거다.
법이 누구의 편에 서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줬다.
그러나, 패배는 종종 새로운 싸움의 시작이 된다.
왜냐하면 패배의 순간에야 비로소, 적이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법정은 여전히 권력의 언어로 말하고, 국가는 여전히 그 언어를 복창했다.
그러나 법이 자본의 방패로만 남을 수는 없다.
역사는 언제나 철창을 녹이는 투쟁과 연대의 언어에서 다시 시작되어 왔다.
우리는 그 언어를 다시 쓰기 시작할 것이다 —
노동이 권력의 피고가 아니라 사회의 주인으로 서는 날,
법은 더 이상 명령이 아니라 해방의 합의로 거듭날 것이다.
그날, 법은 더 이상 판결문으로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거리의 함성 속에서, 서로의 손을 잡은 인간의 얼굴로 되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그 얼굴이 바로 정의의 진짜 이름이 될 것이다.
박미희 해고자 약력 및 투쟁 경과
2002. 8. 28. 부산 기아자동차 대리점 판매직원으로 입사.
2013. 4. 29. 기아자동차 대리점지원시스템 이환 이사에게 부산의 대리점 소장들의 판매
문란 행위 관련 해결을 요청함.
2013. 5. 29. 이환 이사가 대리점 소장에게 고발사실을 알림.
2013. 5. 30. 고발 사실을 이유로 해고됨.
2013. 6. MBN, 채널 A 내부 고발자 해고 내용 취재(방영되지 못함)
2013. 8. 27. 본사 사장실로 전화하여 항의함.
2013. 8. 29. 대리점 지원시스템 송완식 부장이 9월 중순까지 기다려 달라고 요청함.
(이환 이사의 뜻이라고 전함)
2013. 10. 11. 서울 서초 현대자동차 앞 일인시위, 집회 시작
2014. 1. 23. 기아자동차와 부산 대리점에서 민. 형사 소송 소장 받음.
2014. 집회시위 가처분 승소함. 신용훼손 혐의 없음으로 기각됨.
2018. 5. 11. 인권위 정보관의 인권침해 결정
2020. 7. 기아자동차 판매 내부고발 해고자 박미희 공동대책위 발족.
2021. 7. 15. 코로나 4단계 핑계로 서초구청, 서초경찰서 농성장 강제 철거.
2021. 9. 1~10. 31. 청와대 앞 1인 시위.
2021.11.2. 양재동 본사 앞 집회 다시 시작
2022. 7. 10. 염곡사거리로 집회장소 변경.
2023. 1. 4. 인권위 서초경찰서의 인권침해 결정
2023. 5 민주노총 전현직위원장 정치, 단체 위원장 박미희공대위 공동대표자회의 결성
2023. 6. 16 현대기아차 앞 농성장 철거
2023. 6. 17 서초구청장 항의 면담, 전원 연행
2023. 10. 현대기아차의 사과, 투쟁승리 대회
2023. 10. 서초구청이 항의면담을 폭력행위로 박미희와 공대위 3인 검찰 고소고발
민주화를위한 변호사 협의회 무료변론 시작
2025. 3.5 1심 패소
2025. 11. 7 항소심 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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