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 트럼프 재집권하의 미국과 세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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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만수 | 노동사회과학연구소
(이어서)
국제 질서, 특히 미-유럽 관계의 근본적 변화
현재 덴마크 자치령인 그린란드를 ‘구매’하겠다는 탐욕을 포함하여, 유럽연합ㆍ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 대한 트럼프의 정책들은 기존의 자본주의 국제 질서에, 그중에서도 특히 미국과 유럽 국가들 간의 관계에 근본적 변화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제2차 대전 이후 최대의 변화를 초래할 가능성을 다분히 내포하고 있다. 아니 실제로, 트럼프 정권에 의한, 미제의 기존 외교 정책의 전환으로, 앞에서 언급한 통상(通商) 정책들까지를 포함한 외교 정책의 전환으로, 이미 기존의 국제 질서, 국제 정세에 근본적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24] 그린란드 문제도 그렇지만,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의 ‘휴전’ 문제와 관련하여 사실상 유럽연합ㆍNATO를 배제한, 러시아에의 일방적 접근, 러시아와의 일방적 협상은 그동안 의심할 여지 없는 우방이라고 믿어 왔던 미국에 대한 유럽연합ㆍNATO 국가들의 배신감, 혹은 최소한 의구심을, 혹은 위기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널리 알려진 대로, 그리고 인류의 미래에 매우 불길하게도, 유럽 국가들이 서둘러 재군비에 나서고 있다. 보수적 매체, 보수적 논객에 의한 최근의 기사 하나를 인용하자면,
유럽이 재군비에 나섰다. 1940년대 이래 가장 큰 위험에 처해 있다는 위기감이 급속한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급작스러운 정책 전환은 미래에 유럽이 미국의 지원 없이 러시아와 전쟁을 벌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을 불러왔다. 트럼프는 … 나토 회원국이 외부로부터 공격받을 경우 공동 대응한다는 나토 제5조 공약을 준수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언급하고 있지 않다. …
유럽은 … 21세기 들어 러시아는 제국주의 강국으로 재등장했지만 무시했다. … 러시아의 이러한 변화는 유럽 안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유럽 지도자들은 미국의 안보 보장만을 믿고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다. 중국의 급속한 부상에 따라 미국이 안보의 축을 과거 유럽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조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했다.
… 2011년 오바마 대통령은 아시아로의 전환을 발표하면서 유럽은 자신을 방어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GDP의 2%를 방위비로 지출할 것을 권고했고 나토의 공약이 되었지만 … 2011년 단 2개의 국가만이 공약을 이행하고 있었으며, … 2021년에도 4개 회원국만 공약을 지켰다. 미국이 유럽을 방어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은 이제 더 유럽을 지켜주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 70년 만에 미국이 정말로 유럽에서 발을 빼려하자 유럽은 다급해지고 있다. … 미군의 지원 없이 유럽을 방어하기 위해서 유럽은 막대한 인력과 무기를 확보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
위기감은 변화를 촉진한다. … 유럽연합은 8000억 유로(약 1236조 원)에 이르는 국방비 증액을 발표했다. …
유럽 자주국방의 핵심은 프랑스와 독일이다. 독일은 유럽 최대 경제력을 보유한 국가지만 그동안 … 국방비…에 돈을 쓰지 않았…지만 상황이 변화했다는 것을 인식한 독일 정부는 태도를 바꾸었다. …
프랑스는 유럽연합 회원국 가운데 유일하게 핵전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 자신의 핵전력을 유럽 내 다른 국가에 배치하는 것을 꺼려왔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자 프랑스는 핵폭탄을 탑재한 라팔 전투기를 독일 등 다른 국가에 배치할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여기에 더해 현재 유럽 최대 육군 전력을 확보한 폴란드는 자체 핵무장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핵무기에 대한 언급을 금기시하던 유럽은 이제 사라지고 있다.
… 유럽이 자신을 방어하고 러시아의 위협에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결심을 앞으로도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에 따라 유럽, 그리고 세계의 역사는 달라질 것이다.[25]
사안이 사안인지라 인용이 무척 길어졌는데, 아무튼 이 정도면, 트럼프 정권의 대(對)유럽연합ㆍNATO 정책의 전환이 국제 질서, 국제 정세에 얼마나 거대한 변화를 초래하고 있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8,000억 유로(약 1,236조 원)의 유럽연합 국방비 증액! 그리고 “핵무장 카드”! ― 이것은 분명 시작일 뿐인데, 유럽의 이러한 군비 강화는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그런데 트럼프 정권이 촉발하고 있는 국제 정세의 이러한 변화는 거대할 뿐 아니라 성격상 근본적이며, 특히 지난 80년 동안 동맹국 내지 우방이었던 국가들 사이에 긴장과 대립을 조성하고 심화할 것이다. 그 때문에 미제의 차기 정권은, 그것이 트럼프 정권 임기 후의 정권이든, 그 임기의 어느 시점에 들어서는 정권이든, 분명 기존 정책들로의 대부분의 환원을 발표ㆍ시도할 가능성이 높고, 어쩌면 트럼프 정권 자체도 조만간에 일부 정책의 환원을 시도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트럼프 정권에 의한 정책 전환이 다름 아니라 바로 그러한 근본적 변화를 불러오는 성격의 것이기 때문에, 그 환원이 현실화되기는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각국의 ‘국익’이 걸린 문제이고, 그들 국가의 방위가 걸린 문제인데, 한번 잃은 신뢰가 그리 쉽사리 회복될 수 있겠는가?
더구나 트럼프 정권에 의한 미제의 이러한 정책 전환들은 사실은 우연도, 트럼프라는 개인의 성격 등의 때문도 결코 아니다. 그 전환의 양태에는 물론 트럼프나 그의 동업자 머스크 등의 성격이나 그들의 사적 이해관계가 분명 반영되어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그것들은, 근래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 공화국 + 이란, 아랍에미리트, 이집트, 에티오피아)의 부상(浮上)으로 상징되는 제국주의의 다극화, 그에 따라 진행되고 있는 미국의 절대적 패권의 약화ㆍ상실에 대한 미 제국주의의 대응 방식이며, 대응 양태이다. 자본주의의 저 불균등 발전의 법칙이 관철되고 있는, 상부구조상에서의 한 현상인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이 전환들은 근본적으로는 실로 필연적인 것들이다.
제국주의 국가 간의 대립 격화와 인류 절멸 가능성
한편, 자본주의 국제 질서, 그 국제 정세의 이러한 근본적 변화, 즉 제국주의의 다극화는, 그것이 미제의 절대적 패권의 약화ㆍ소멸의 표현이라고 해서, 일부 ‘진보적 지식인들’이나 천하 희대의 자칭 마르크스-레닌주의자(mlkorea) 등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침략ㆍ살육ㆍ약탈ㆍ강권과 전횡”의 질서로부터 “자주ㆍ평등ㆍ호혜ㆍ친선에 기초한 다자주의와 다극화 세계”로의 전환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유럽의 주요 국가들에서 근자에 급격히 세를 확장하면서 속속 집권에까지 이르고 있는 ―국가주의ㆍ애국주의의 극단적 표현으로서의― 극우화ㆍ퐈쑈화와 더불어, 제국주의 국가들 간의 경쟁과 대립을 가일층 격화시키는, 그리하여 대량의 핵병기 시대인 현재 인류의 절멸을 불러올 제3차 세계대전의 발발 가능성이 더욱 고조되는 사태의 전개이다.
특히 트럼프 정권의 관세 정책 등, ‘미 국익’ 위주의 정책에 각국의 부르주아지가 반발하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국민을 향해 국가주의ㆍ애국주의 선전ㆍ선동을 더욱 강화할 터인데, 각국의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계급적 정체성을 망각한 채, 이 국가주의ㆍ애국주의 선동에 놀아난다면, 대전의 발발 가능성과 그에 따른 인류의 절멸 가능성은 더욱 짙어질 것이다.
오직 노동자계급의 국제주의와 혁명적 투쟁만이 …
그러면, 이러한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인류를 구제할 길은 과연 무엇일까?
자본가계급, 특히 독점자본가계급은, 인간이야, 인류야 어떻게 되든 이윤만을 추구하는, 이윤만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존재여서 인류를 멸종의 길로 몰아가고 있는 장본인들이다. 그리고 소부르주아 계급은 중심도 원칙도 없이 동요하는 존재이다.
그 때문에 절멸로부터 인류를 구할 수 있는 것은, (독점)부르주아지의 착취와 억압ㆍ지배에 대항하여 싸우는 노동자계급뿐이다.
이에 세계 각국의 노동자계급은, 인민대중 일반을 대표하고 그들을 선도하면서, 트럼프의 재집권을 계기로 더욱 다극화되면서 더욱 가파르게 전개되고 있는 이러한 사태 발전의 추이를 예의 주시해야 하고, 부르주아지가 고취하는 국가주의ㆍ애국주의를 단호히 경계하며, 노동자 국제주의에 입각하고 그것을 강화하면서, 단호한 각오와 과학적인 전략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적 정세에 혁명적으로 대응ㆍ투쟁해야 한다! 그것도 서둘러서! ― 실로 이것만이 임박한 인류의 절멸을 막고,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가 없는 공생공영(共生共榮)의 세상을 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여기에서 잠시 역사를 되돌아보면, 주지하는 바이지만, 러시아 사회주의 대혁명 이후 그 영향을 받아, 그리고 1930년대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자본주의 각국의 노동자계급의 운동과 투쟁은 그 혁명성을 고도로 강화하면서 발전했다. 그런데, 제2차 대전의 엄청난 파괴와 살육의 ‘역설적’ 경제적 후과인, 전후(戰後) 자본주의 경제의 상대적 안정기ㆍ번영기를 거치면서, 그리고 특히 노동자계급의 저 혁명성을 제거하려는 서유럽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사민주의 복지국가’ 정책에 의해서, 심히 유감스럽게도 대개의 노동자계급은 그 혁명성을 심히 상실해 가다가, 1989-91년에 발생한 역사의 대반동, 즉 쏘련을 위시한 20세기 사회주의 세계 체제의 해체를 계기로 그 혁명성을 결정적으로 상실해 버렸다. 그리고 그 이래, 자본주의 세계 경제의 객관적 상황과 조건도, 자본주의 국가들의 대(對)노동자 정책도 완전히 달라진, 자본주의의 대위기의 시대인 지금까지도 세계 각국의 노동자계급은 그 혁명성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거듭 얘기하지만, 새로운 제국주의 세계대전에 의한 인류의 절멸 가능성이 결코 상상만은 아닌 상황, 아니 그 가능성의 현실화가 사실상 임박한 상황을 고려하면, 그리고 이렇게 임박한 인류의 절멸을 막고,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가 없는 공생공영의 세상을 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노동자 국제주의에 입각한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투쟁, 혁명적 노동자들이 선도하는 노동자ㆍ인민의 해방ㆍ혁명 투쟁뿐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노동자계급의 혁명성의 회복과 강화는 절박한 절대적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선진 노동자들의 분투노력이 참으로 절박하다! (끝)
↑24 | “수입관세는 미국을 포함하여 모두에게 해롭다고 전 세계 국가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도널드 트럼프는 국제관계를 항구적으로 바꾸어버렸다고, 캐나다 총리는 말했다.” (Jon Henley, “전 세계 동맹국들이 트럼프의 자동차 관세를 비난하는 것처럼, 카니(Carney, [캐나다 신임 총리])는 캐나다-미국 유대관계 시대의 종말을 말하다(End of an era for Canada-Us ties, says Carney, as allies worldwide decry Trump’s car tariffs)”, The Guardian, 2025. 3. 28. <https://www.theguardian.com/us-news/2025/mar/27/us-allies-worldwide-decry-trump-car-tariffs-and-threaten-retalia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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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 최준영(법무법인 율촌 글로벌 정책ㆍ법률전문위원), “[최준영의 월드+] 재군비 나선 유럽, 금기시하던 핵무장론도”, ≪아시아경제≫, 2025. 3. 19. <https://view.asiae.co.kr/news/view.htm?idxno=2025031814471633824>(혹은, <https://news.nate.com/view/20250319n20566>) |
§노동사회과학연구소, <<정세와노동>> 제208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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