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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루프탑으로 올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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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신문
2025-06-07 23:17 68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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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욱 (노동예술단 선언)



제목이 한 번에 와 닿지 않는다면 이건 어떠신지? “옥상으로 올라와!”

같은 말이다. 그러나 느낌은 다르다. ‘말죽거리 잔혹사’라는 영화에서 소위 일진들과 일전을 벌이기 위해 주인공이 던지는 대사로, 대체로 학창시절 좋지 않은 기억을 떠올릴 법한 말이다. 같은 뜻의 말이지만 하나는 즐겁거나 낭만적인 느낌으로, 하나는 불쾌하거나 섬뜩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나는 청소년기 시절 옥탑방이라고 불리는 옥상에 지어진 집에 살았다. 집이라 표현했으나 천장 한쪽이 거의 머리까지 내려앉고 여기저기 비가 새던 그런 곳이었다. 수도 시설이라곤 문밖에 달랑 하나 있는 수도꼭지가 전부였다. 그래서 특히 겨울의 아침은 끔찍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사정이지만, 해서 내게 옥상이란 아픈 단어이다.


뻔한 ‘라떼’(나 때는)시전이라 여길 수 있을 듯해서 현재 얘기를 하자면, 글을 쓰는 지금 시점 내게 옥상은 박정혜 동지가 있는 곳이다. 불탄 공장 옥상에서 500일 넘게 최장기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그 박정혜 말이다. 이 역시 가끔 있는 우연한 일을 가지고 지나치게 일반화한다고 생각하신다면… 맞다. 옥상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개인적 경험으로 일반화할 생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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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적어도 내겐 늘 있었다. 안산의 어느 공장 옥상에는 건물 아래에서 폭력을 행사하던 구사대에게 던질 게 없어 자신의 인분을 던지며 분노하던 내 동지가 있었고, 쌍용자동차 옥상에는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에 퍽퍽 쓰러져가던 해고 노동자들이 있었고, 용산 어느 건물 옥상엔 자신의 아버지를 불태워 죽였다는 누명을 써야 했던 철거민들의 처절한 피울음이 있었고, 울산의 어느 호텔 옥상에, 고속도로 휴게소 옥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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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은 옥상에 언제나 노동자 민중의 절규가 있었다. 그래서 그때나 지금이나 쭉 내게 옥상이란 아픈 단어이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민주노총의 노동자들이다. 하기에 모든 이들에게 일반화할 순 없어도 투쟁하는 노동자 민중이라면 나와 같은 느낌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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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였을까? 민주노총이 지난 4월 윤석열 파면 승리를 축하하며 하려 했던 파티를 굳이 ‘옥상’이란 말대신 ‘루프탑’ 파티라고 이름 지었던 이유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구미의 어느 루프탑(옥상)에서 조합원의 농성이 500일을 향해 가던 그 순간에,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고진수, 김형수 두 조합원의 목숨을 건 고공농성이 이어지고 있던 바로 그 순간에 민주노총 명의의 한 웹자보가 공개됐다. 한강뷰 파티룸으로 잘 알려진 곳에서 ‘양경수 위원장과의 토크+포토타임, 루프탑 BBQ파티, 경품추첨’ 등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분노한 동지들의 항의에 취소하긴 했다. 사과문도 아닌 취소 안내문 하나 덜렁 올린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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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도 파면시킨 마당에 노동자들이 파티도 못하나? 옥상에서 농성하는 것과 루프탑 파티를 연결하는 것은 과한 거 아닌가?’라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런가? 숱하게 이해해 보려 했다. 이 글도 그 사건 후 꽤 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쓰고 있다. 최대한 냉정하게 생각해 보려고…


그러나 아무리 여러 번 다시 생각해 봐도 달라지지 않는다. 단식농성을 하던 세월호 유가족들 옆에서 피자파티를 하며 조롱하던 그들을 봤을 때와 동일한 그 감정 말이다. 역시 과하다고? 아니다. 오히려 동일한 감정이 아니라 더 격한 감정이었다. 세월호 유가족 앞에서 피자파티를 하던 그들에게 화는 날지언정 감정이 요동칠 일은 없었다. 애초에 그들과는 적대적 관계니까. 그런데, 옥상에서 파티하고 사진 찍고 경품도 추첨하겠다는 그 사람은 옥상에서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위원장이다.


사실 일명 ‘루프탑 파티’ 사건에 대해 문화적 맥락에서 다각도로 냉정하게 분석해보려는 의도로 이 글을 시작했다. 글렀다. 지금도 자판을 두드리는 손가락이 떨릴 정도로 냉정해지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서 한 가지만 얘기해 보련다


피자 먹는 게 문제가 아니듯 루프탑에서 파티하는 것도 문제는 아니다. 나도 옥상에서 고기를 구워 먹은 적 있고 많은 노동자도 그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보편의 영역이다. 그러나 민주노총, 그것도 위원장이라는 규정은 특수의 영역이다. 화려한 원색의 옷이 보편의 영역에선 문제가 되진 않지만, 장례식이라는 특수의 영역에서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듯이 민주노총, 그리고 위원장이라는 이름을 공식적으로 내걸고 벌이는 특수의 영역에선 옥상에서 고기 구워 먹는 행위 하나도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여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저 ‘고공농성하는 이들이 있는데 어떻게 위원장이 옥상에서 파티할 수 있냐?’는 인간적(그것도 충분히 화날 일이지만) 도의의 문제가 아니다. 버젓이 웹자보가 나왔다는 것은 민주노총도, 위원장도 충분히 이 일을 검토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헤프닝이나 실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민주노총에서 이 행사를 기획한 이들도, 위원장도 그들의 정체성이 가지는 특수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거나, 그 범주를 이미 벗어나 있는 것이 그들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화란 특정 사회 구성원들의 생활방식, 가치관 등을 포함한다. 어떤 공동체가 다른 공동체와 변별되는 고유한 특성을 공유하며 그 바탕 위에 형성된 세계관, 신념, 행동 등이 문화로 나타난다는 말이다. 하기에 민주노총이라는 특수한 공동체가 가지는 문화적 인식에 있어서 옥상이란, 내게 그러했듯이 생존이 벼랑 끝에 몰린 수많은 노동자 민중의 처절한 투쟁의 장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해서 민주노총 상층부의 인식이 스스로 투쟁하는 노동자 민중이라는 공동체성과 얼마나 철학적으로도 실천적으로도 괴리 되어 있는지를 문화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이번 ‘루프탑 파티’사건이다. 그런 한, 스스로 보수정당이라고 말하는 민주당과 절연하지 못하는 것 또한 이해 못 할 일이 아니다. 특수의 영역을 인식하지 못하면 보편만 남는다. 말할 나위 없이 우리 사회의 보편성은 자본주의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루프탑 파티 취소 안내문에조차 ‘고공에서 힘차게 투쟁을 이어 나가고 있는 동지들을 응원 하며’라 쓸 수 있었을 거다. ‘응원?... 누가 누굴?’ 이미 그들 자신의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옥상’은 ‘루프탑’이니까. 


이번 사건을 다룬 어느 제도권 언론 기사 내용 하나를 소개한다. 최근 민주노총에 가입했다고 밝힌 한 젊은이(기사 표현 그대로)는 “민주노총에 가입한 이유가 위원장이랑 사진 찍고 루프탑 파티나 하는 ‘쁘띠 부르주아’행세를 하려 한 것이 아니다”며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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