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가 가장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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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의 (시간제 노동자. 건달 농사꾼)
올해 1월 1일부터 노치원 일을 시작했으므로 벌써 반년이 넘었다. 처음에는 노치원이라는 말을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적확한 단어라는 생각이 든다. 애들을 맡아 가르치는 곳이 유치원, 노인들의 육체와 정신의 퇴보를 막는 것이 노치원이다. 노인들이 점점 어린애가 되어가는 것을 보면 서글픈 감정을 느끼게 된다. 노인들은 노치원에서 어린애처럼 보살핌을 받는다. 움직일 때는 부축을 해야 하고, 용변을 보고 나면 씻겨주거나 기저귀를 채워준다. 옷을 더럽히거나 냄새가 심하게 나면 빨아서 갈아입힌다. 노치원의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색칠 공부, 윷놀이, 노래 배우기 이런 것인데 모두 시간 채우기와 치매 예방을 겸한 것이다. 그래서 노치원 가기를 아주 싫어하는 노인들도 있다. 거기서 하는 일이 한심해 보이는 거겠지.
내 정신이야 할머니는 “농사일이 태산인데 이게 종일 뭐하는 짓이여”하며 투덜댄다. 집에 모셔다 드리면, “내일은 오지 마유. 들깨 모도 부어야 하고, 풀도 뽑아야 하고...” 하고 부탁한다. 나는 “네.”하고 대답하지만, 다음날 여지없이 마당에 가 클랙슨을 누른다. 그러면 할머니는 자신이 부탁한 일을 까맣게 잊고 차에 오르는 것이다.
내정신이야 할머니는 경증 치매다. 자식들은 도시에 살아서 혼자 지내는데 농사를 꽤 짓는다. 몸은 건강한 편인데 정신이 받쳐주지 않는다고 할까. 할머니는 기억력이 떨어져 어제 한 말은 고사하고 금방 했던 말도 잊어버린다. 그래도 나는 이 할머니가 노화가 덜 된 편이라고 생각한다. 농사일과 집안일, 개 두 마리를 건사하는 일이 할머니의 노화를 막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매일 할머니 여덟 분을 출퇴근시킨다. 88세에서 96세까지 모두 상노인들이다. 모두 치매나 장애 정도에 판정을 받았으므로 약간의 문제들이 있다. 중증 치매 한 분, 경증 치매가 두 분, 귀가 철벽인 할머니, 허리가 구십도로 굽은 이 두 사람, 어깨가 고장이나 살살 다뤄야 하는 분, 그리고 총명하지만 말이 엄청 많은 분이 있다. 나에게는 총명한 노인이 가장 힘들다. 우선 말이 겁나게 많고 남의 험담을 즐긴다. 제비마냥 늘 소문을 물어 나르므로 듣기만 해야 한다. 한마디 거들었다가는 “기사 양반이 아무개는 냄새가 심하다고 했대.” 그러면 바로 사달이 날 것이다. 귀가 철벽인 할머니가 가장 편하다. 이분은 차에 타면 내릴 때까지 돌부처마냥 묵묵히 있다. 가끔 기침을 하면, 아, 냉방이 너무 센 모양이구나 하고 알아듣는다.
노인들이 순해서 어려운 건 없지만 자잘한 신경이 많이 쓰인다. 신장이 망가진 할머니는 늘 누워 지내는 것 같다. 아침에 데리러 가면 맨발에 양말을 손에 쥐고 나온다. 누워 있다가 나온 까닭에 머리칼이 부스스하다. 온몸은 퉁퉁 부어 있고, 붙잡아 주어도 거동이 어려워 “오늘내일 누런 강 건너도 이상하지 않겠네.”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목숨이 때로는 허망하지만 의외로 끈질겨서 이 노인처럼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이다.
하루는 할머니가 “기사 양반, 오늘은 아파서 도저히 안되겠네. 안가면 안돼유?” 하고 애원하였다. 난감해진 나는 “아들에게 이야기할까요? 아들이 원장하고 통화하게 할게요.”하였다. 그랬더니 “그만둬유. 그냥 갈테유.” 하는 것이었다. 아들은 낮에 농사일을 해야 하므로 노인을 주간보호소에 맡기는 것이다. 여름이 되어도 털신을 신고 있으니 노인에게 그다지 신경쓰는 것 같지도 않다. “차라리 요양원에 모시는게 낫지 않을까?” 여동생에게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요양원은 비용이 비싸니까 그냥 두는 거여요.”하였다. 여동생도 요양보호사 일을 한 경험이 있다. 체력이 약하고 노인들 보살피기가 힘들어 일주일 만에 그만두었다고 한다. 하여간 이 할머니는 요즘 걸음이 안되어 계단을 기어서 오른다. 조만간 요양원으로 가거나 문앞에 검은 테를 두른 등이 달려있기 십중팔구일 것이다.
가족들은 치매 할머니들에게 속임수를 예사로 쓴다. 중증 치매 할머니는 집이 가까워 금방 퇴근시킬 수 있다. 하지만 가족들 귀가 시간에 맞추느라 다른 이들을 모두 내려주고 마지막에 인계를 한다. 가는 길에 내려주면 될 것을 부러 빙 돌아서 집으로 가는 것이다. 다른 할머니들도 마찬가지다. 집에 있으면 돌봐야 하니 어떻게든 노치원에 보내려고 한다. 결국 노인들은 가족들의 짐 외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런 일을 볼 때마다 “나는 과연”하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요양원에 가는 걸 싫어하고 무서워하지만 주간보호소도 마찬가지이다. 십년이나 이십년 후 내가 그곳에서 색칠공부를 하거나 윷놀이 따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등골에 식은땀이 난다. 우리 애들이 어떻게든 나를 그곳에 보내려고 하고, 내가 아닌 자식과 원장의 합의에 따라 가부가 결정된다면, 내 자존심이나 존엄성은 과연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
노치원에서 일하며 나는 장수가 가장 무서운 질병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불치병이나 암은 장수하는 것에 비하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선택의 길이 없고 기다림도 짧으니 얼마나 칼칼한 최후인가? 인간으로서 마지막 자존심까지 지키지 못하게 된다면, 내가 누군가의 짐이 되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나도 모종의 결심을 해둔 것이 있다. 그런 것을 굳이 여기서 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 월간 <작은책> 9월호에도 실린 글입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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