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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대 인물 열전] 국민당에서 암약한 중국공산당의 첩보원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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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신문
2025-10-04 12:52 16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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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의 (國共內戰 저자)


혁명투쟁에서 첩보활동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쉽다. 역관계에서 압도적으로 불리한 공산당도, 공산당원을 박멸하기 위해 총력을 다하던 국민당도 첩보활동에 힘을 쏟았다. 공산당은 국민당의 계획이나 비밀을 탐지하여 생존하려고 했으며, 국민당은 공산당을 뿌리째 뽑으려 하였다. 국공내전 과정에서 공산당은 첩보활동을 통해 공격계획을 사전에 입수했다. 국민당은 공산당 안에 심어둔 첩자들을 통해 조직을 파괴하고 공산당원들을 검거했다. 이 같은 첩보활동의 승자는 결국 공산당이라고 할 수 있다. 공산당은 첩보활동을 저우언라이(周恩來)가 지휘했는데, 첩보원들은 당 조직을 보전하는 것은 물론 내전의 승리로 중국대륙을 통일하는 데 커다란 공을 세웠다. 수많은 이들이 국민당 치하에서 암약했지만, 그중 몇몇 사례를 들어 일부나마 들여다보기로 한다. 


중국에서 대표적인 첩보원으로 리커농(李극農)을 손꼽는다. 그 밖에도 치엔좡페이(全壯飛), 후디(胡底)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이들은 지금도 수많은 연속극에서 주인공으로 활약하고 있다. 첩보물은 예나 지금이나 대중들에게 커다란 재미를 주는 소재다. 신출귀몰한 주인공과 그를 돕는 미인 첩보원들과 그들을 잡으려는 국민당 조사통계국 요원들의 활약은, 약간의 사실에 허구를 더해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위 세 사람 외에도 천종징(陳忠經), 신젠(申健), 숑샹후이(熊向晖) 등이 유명한데 위 세 사람을 전삼걸, 뒤의 사람들을 후삼걸이라고 부르고 있다. 앞으로 몇 회에 걸쳐 이들의 활약을 소개하기로 한다.



①전삼걸(前三杰) 리커농(李극農), 치엔좡페이(全壯飛), 후디(胡底) 


1927년 장제스가 상하이 사변을 일으켜 공산당원과 노동자들을 학살하자, 중공 중앙은 우한에서 상하이로 본부를 이전했다. 국공합작이 깨졌으므로 지하활동에 들어간 것이다. 이때 저우언라이는 중앙특과(中央特科)라는 비밀 정보조직을 결성했다. 


우리는 저우언라이가 신중하고, 신사적이며, 유능한 총리로 알고 있지만, 실은 공산당 안에서 온갖 궂은 일 처리를 다 한 팔방미인이었다. 신중국 이전 그는 정치, 군사, 외교, 통일전선 공작, 비밀공작 등 온갖 활동에서 책임자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가 설립한 중앙특과는 첩보는 물론 구속된 이의 석방 및 탈옥, 배신자 처단 등 정보기관의 여러 활동을 담당하였다. 이때 활약한 이들 중 리커농, 치엔좡페이, 후디를 전삼걸이라고 일컫는다. 나중에 해방군에서 조자룡처럼 활약한 천겅(陳賡)도 이 무렵에는 중앙특과의 부책임을 맡고 있었다. 천겅은 국민당에 잡혀 온갖 고문을 당했지만, 저우언라이의 구명활동과 쑹칭링(쑨원의 부인)의 도움 등으로 석방되기도 하였다. 전삼걸에 속한 세 사람은 저우언라이의 지시에 따라 국민당 내부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1928년 치엔좡페이는 국민당이 운영하는 상하이 국제무선전신관리국에 잠입하였다. 이때 국민당은 조사통계국을 설립하여 첩보공작을 담당하게 하였는데, 쉬언징(徐恩曾)이 사실상의 책임자였다. 치엔좡페이는 지금도 연속극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다. 잘생긴 데다 영민하고 다재다능한 인재여서 금방 쉬언징의 눈에 들었다. 그 당시는 무선이 가장 중요한 비밀 통신수단이었으니 치엔좡페이는, 국민당의 중요 비밀정보를 앉아서 습득할 수 있었다. 공산당 파괴에 대한 국민당의 지령을 미리 알아내어 요인을 피신시키거나 동향을 보고하는 등 그의 활약은 엄청났다. 나중에 쉬언징은 이렇게 탄식하였다. “그는 늘 근면 성실하였고 충성스러웠다. 능력이 뛰어나 무슨 일을 맡겨도 문제가 없었다. 그는 말수도 없었고 업무 외의 일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오직 나의 명령에 충실히 따를 뿐이었다.” 이쯤 되면 타고난 첩보원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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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커농은 신문 편집인 신분을 가지고 있었다. 후디는 영화배우로 활동하였다. 하지만 그들의 본업은 지하공작원이었다. 저우언라이는 리커농과 치엔좡페이, 후디 등 세 사람으로 비밀공작조를 결성하였고 리커농을 조장으로 임명하였다. 이때 치엔좡페이는 리커농에게 국민당 무선전신관리국에 취직하라고 권하였다. 당시 무선관리국의 시험 경쟁이 매우 치열해서 리커농은 불합격하고 말았다. 불합격 원인은 큰 글자를 잘 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신언서필이라고 무선국 시험에 붓글씨를 보는 게 조금 의아하기는 하다. 하여간 리커농은 자나 깨나 큰 글씨 연습을 하여 마침내 다음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다. 무선관리국에 취업할 때 이름은 리쩌티엔(李泽田)이라는 가명을 썼다. 그는 무선관리국의 신문 편집을 맡게 되었다.


이때 쉬언징은 국민당 실세였던 천리푸, 천궈푸 형제의 추천으로 국민당 중앙조직부 조사과 주임을 맡고 있었다. 이 조직은 나중에 중앙조사통계국으로 발전하며 비밀 특무공작을 책임지게 된다. 쉬언징은 유능한 조수를 찾다가 영민한 치엔좡페이를 기밀비서로 선임하였다. 공산당의 유능한 첩보원을 비서로 두었으니, 비밀이 줄줄 샐 것은 불문가지로 되었다. 치엔좡페이가 기쁜 소식을 리커농에게 보고하고 마침내 당에도 전달되었다. 리커농을 비롯한 새사람은 국민당 특무기구에 잠입하는 데 성공하였고, 중공 중앙 특과 2과장인 천겅의 지휘를 받게 되었다. 


쉬언징은 난징의 중산로에 비밀 거점을 차려놓고 특무활동을 지휘하였다. 치엔좡페이는 쉬언징의 비서로 쉬에게 오는 전문을 먼저 보게 되었다. 쉬언징에게 보고하고 결재를 받았지만, 그의 손에서 전결 처리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마침내 치엔좡페이는 국민당의 비밀을 한 손에 장악하게 된 것이다. 저우언라이가 국민당의 움직임을 손바닥 안에 놓고 들여다보는 꼴이 된 것이다. 그러니까 저우언라이와 같은 인물이 상하이에서 몇 해 동안이나 비밀활동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전 3걸을 알기 전까지 어떻게 공산당 지도부가 상하이에서 계속 활동할 수 있었는지 안개에 싸여 있었다. 이제 조금 이해가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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