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현대인물 열전] 국민당 내에서 암약한 첩보원들 (2) - “혁명과 당의 반도” 구순장(顧顺章) 사건
본문
이철의 (國共內戰 저자)
1931년 4월 중공 중앙 특과 간부이던 구순장이 국민당 당국에 체포되었다. 그는 특과의 작전부 지휘자로 비밀공작에서 많은 공적을 쌓은 인물이었다. 중공의 비밀 첩보원 중에서 그는 가장 극적인 인물로 손꼽힌다. 불우한 어린 시절, 어린애도 벌벌 떤다는 테러조직 청방의 조직원, 공산당 가입, 노동자 파업의 지도자, 난창봉기의 지휘관을 거쳐 특과의 책임자가 된 것이다. 특과에서 그의 지위는 천겅과 같아서 저우언라이의 직접 지휘를 받는 행동대의 책임자였다. 그만큼 그의 경력과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이었다.
파란만장한 성장 과정, 비밀 테러조직 '청방'에 가담하다
1904년 구순장은 장쑤성 난퉁(南通)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부친을 잃어 문맹인 어머니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10대에 그는 굶기를 밥 먹듯이 하다, 무작정 상하이로 갔다. 어린 그를 상하이가 반길 리가 없어 거리의 불량배들에게 매질을 당하며 살았다. 어릴 때부터 고초를 겪으면 사람이 질겨진다. 잡초처럼 질긴 생명력을 가진 구순장은 무술을 배워 몸을 지키고자 하였다. 마침내 그는 날렵한 몸매와 날쌘 동작을 지니게 되었다. 깡패들과 싸우다 다쳐도 신음하거나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며, 의협심이 있어 얻어맞는 사람을 구하는데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무술 선생을 잘 만났다고 한다. 영화에서 흔히 보는 것처럼 스승은 “네 몸을 보호하고 약한 이를 위해서만 써라. 항상 정의감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쯤 되면 한국의 전설적인 주먹 김두한이 생각날텐데 불행히도 김두한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시비가 걸릴테니 긴도깡 이야기는 이쯤에서 거두기로 하자.
상하이를 떠돌며 살던 구순장은 거리의 악사, 곡예사 등 길거리 인생들과 만났다. 그는 특히 길거리 마술에 매료되어 밥만 먹으면 마술을 연습하고 연구한 끝에 통달하게 되었다고 한다. 무술하지, 의협심이 있지, 마술도 능숙하지 이쯤 되면 온갖 사람들이 좋아하기 마련이다. 일급 폭력배가 될 자질을 갖춘 그는 비밀 테러조직 청방에도 가입하였다. 청방은 어둠의 제왕이라는 두웨성이라는 악당이 두목이었다. 권력과 결탁하여 매춘, 도박, 테러 등 온갖 악행을 일삼던 공공연한 비밀조직이었다. 즉 대놓고 나쁜 짓을 해도 괜찮은 공인된 범죄단체였는데, 그 배후에는 장제스가 있었다. 공산당원과 노동자들을 테러하거나 처형하는 악역을 도맡았으니 장제스가 정부기관으로 할 수 없는 일을 대신했던 것이다. 두웨성은 상하이에서 매점매석을 혁파하려던 장징궈에게도 공공연하게 반항하였다. 그만큼 뒷배가 든든한 악당이었던 것이다.
리리싼(李立三), 샹징위(鄕景玉)의 눈에 띄다
하지만 구순장은 권력을 믿고 날뛰는 청방의 다른 조직원들과 달랐다. 청방의 중간 두목이면서도 약자를 도와주고 투쟁하는 노동자들도 보호했다고 한다. 이상한 폭력배 두목을 노동운동 지도자인 리리싼(李立三), 샹징위(鄕景玉) 등이 주목하게 되었다. “이 사람,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하겠는걸.” 리리싼 등은 민첩하고 총명한데다 정의감이 강한 구순장이 프롤레타리아의 선봉대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리리싼 등의 지도를 받은 구순장은 과연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1924년 구순장은 어린 시절 일했던 담배회사에 잠입하여 노동자 파업을 조직했다. 그러던 중 구사대에게 중과부적으로 되어 구타당하고 경찰서에 구금되었다. 공산당 상하이위원회는 보석금을 내고 그를 석방시켜 독일로 근검공학 유학을 보냈다. 그를 당의 핵심 역량으로 키우고자 한 것이다. 유학에서 귀국한 그는 곧바로 공산당에 가입한 뒤 다시 노동자 파업을 지도하는 등 크게 활약하였다. 능력을 인정받은 구순장은 마침내 상하이의 공산당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26년 구순장은 천겅과 함께 소련으로 가서 정치보위사업과 무장봉기 등을 전문적으로 학습하였다. 드디어 그의 자질에 걸맞는 역량을 키울 수 있게 된 것이다.
1927년 구순장은 중국으로 돌아와 상하이 노동자 무장봉기를 조직했으며, 노동자 무장투쟁대의 총지휘에 임명되었다. 1928년에는 특수부대원들과 함께 당을 배반한 허자싱에게 총격을 가했으며, 1929년에는 우익인사 바이신과 경호원을 사살하는 등 눈부신 테러활동을 벌였다. 구순장은 저우언라이의 부관 역할을 했으며, 작전부서인 제3부의 수장으로 활동했다. 그의 임무는 첩자 색출, 배신자 처단, 중앙기관 및 요인 보호, 체포된 당원의 구출, 중앙위원회 및 각종 회의의 엄호와 같은 위험하고 어려운 일들 뿐이었다.
공산당에서 지위가 올라가자 오만해지다
구순장이 독보적인 활약을 보이자 공산당내 영향력도 점점 강화되었다. 그는 중앙 정치국 후보위원이 되어 당의 핵심 지도부에 진입하였다. 고위층이 될수록 사람의 자질이 금방 드러나게 된다. 지위가 높아질수록 구순장은 점점 오만해졌다. 술과 도박, 매춘 등 방탕한 생활을 하자 당에서도 우려의 눈길을 보내기 시작하였다. 그와 함께 특과의 지휘자로 활동하던 천겅은 “우리는 조만간 구순장이 반란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말 것이다.”고 예언하였다. 마침내 당에서 캉성(康生)으로 책임자를 교체하려 하자, 그는 극도로 불만을 표시했으며 그때부터 배반할 생각을 품었다고 한다. 훗날 결과적으로 그가 배신하였기 때문에 그런 추측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여간 그는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천겅과 반대되는 길을 걸어갔다. 천겅은 장제스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아 마음만 고쳐먹으면 출세가 보장된 처지였다. 그런데도 끝까지 장제스에 맞서며 고통을 감내한 천겅과 굴절되고만 구순장의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혁명가 또는 운동가들의 영원한 숙제라고 할 것이다.
국민당 군에 체포된 후, 공산당을 배신하다
1931년 3월 훗날 장정 4방면군의 지도자로 마오쩌둥과 대립하게 되는 장궈타오가 후베이와 허난, 안후이성으로 배치되어 떠날 때 구순장은 그와 장의 심복 천창하오를 호송하였다. 호송을 마친 구순장은 우창에서 배를 타고 한커우로 돌아오던 중 국민당 당국에 체포되었다. 배신자의 밀고로 보위부에 체포된 구순장은 오래지 않아 자신이 알고 있던 모든 당의 비밀을 털어놓았다. 당의 비밀공작 책임자였던 그의 배신은 당에 엄청난 위협으로 돌아왔다. 저우언라이를 비롯한 당의 요인들과 아지트를 모두 불었으니 지도부가 일망타진될 판이었다.
그러나 저우언라이 휘하에는 또 다른 첩보원들이 있었다. 그런 것을 보면 저우언라이의 주도면밀한 성품을 엿볼 수 있다. 당시 국민당 정보책임자였던 쉬언징의 비서는 공산당의 최정예 첩보원 치엔좡페이였다. 그는 국민당 중앙조사국의 비밀을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는 자리에 있었다. 치엔좡페이는 구순장의 배신을 바로 확인하고 중앙위원회에 사실을 전달하였다. 그 결과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장쑤성 위원회는 파괴를 면하였다. 저우언라이와 주요 간부들이 곧바로 피신하여 목숨을 건졌던 것이다. 당시 중앙특위에서 활동하던 네룽전―훗날 10대 원수로 임명된 사람―은 “그때 정세가 매우 심각했다. 적이 활동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행동해야 하였다. 저우언라이 동지가 직접 지휘하여 중앙의 기관과 간부들이 이전하였고 당은 커다란 화를 면할 수 있었다.”고 술회하였다.
하지만 구순장의 배신으로 수많은 간부와 당원들이 붙잡혀 처형되었고 많은 조직이 파괴되었다. 그 후 공산당은 소비에트공화국 임시 중앙정부의 명의로 구순장에 대한 수배령을 발령하였다. 소비에트 주석이던 마오쩌둥이 직접 서명한 수배령에는 “국민당 반혁명 분자들의 음모와 술책에 경계해야 한다. 반역자 구순장을 반드시 체포하라. 그를 혁명재판소에 회부하여 재판을 받게 해야 한다. 모든 혁명 투사와 노동자, 농민과 빈민은 반역자를 제거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후각이 뛰어난 데다 민첩한 그를 공산당이 잡을 수는 없었다. 오히려 국민당 지도부가 야심이 큰 구순장을 경계하고 있었다.
국민당 정보국에서 활동했으나 결국 처형되다
구순장은 국민당 정보당국에서 활동했지만, 조직적인 기반이 없었다. 그러면 수굿이 시키는 일이나 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그의 야심이 컸다. 그는 중앙 조사통계국과 군사통계국 사이를 오가며 양쪽의 인정을 받으려 하였다. 정보조직들은 서로 경계하며 권력자의 인정을 받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한다. 결국 두 조직으로부터 경계와 무시를 당하던 구순장은 새로운 조직을 창설하려고 하였다. 한 번 배신한 사람은 주목을 받기 마련인데 구순장은 그걸 소홀히 한 것이다. 마침내 그는 국민당 보안당국에 체포되었다. 1935년 국민당은 쑤저우 감옥에서 구순장을 비밀리에 처형했다.
대혁명 시기 파란만장한 운명을 타고난 구순장은 결국 자신이 해오던 활동방식에 따라 생을 마감하였다. 중국은 그를 “혁명의 반도”로 규정하여 역사적인 징계를 계속하고 있다.
▲ 첩보극에서 열연한 구순장의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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