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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의 자본주의적 이용, 그리고 노동운동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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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신문
2026-03-10 05:47 31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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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균 (발행인 )


1. 들어가며

자본주의 근본모순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전유의 사적 성격 간의 모순’으로 축약할 수 있다. AI로 표현되는 인공지능의 발전, 그것의 생산 전 영역으로의 적용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는 곧 고용 없는 성장, 무인 생산 시스템으로 달려가고 있다는 의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에게 노동력을 팔아 그 임금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실업과 반실업의 만연은 곧 노동자 민중의 빈곤화를 의미한다. 


전 세계는 과잉생산에 따른 만성적 위기가 지속되는 되는 가운데, 첨단기술, 시장ㆍ원료ㆍ운송망을 둘러싼 제국주의 경쟁이 더욱 격화하고 있다. 제국주의 간 극한 대립, 곳곳에 터지는 전쟁, 미국의 노골적인 깡패 짓, 남아도는 자본수출을 통한 이윤 확보와 영향력 확대, 군비 경쟁과 국가 간 이합집산 등이 모두 경제문제가 정치화, 국제화한 것이다. 제국주의적 자본독재 체제는 언제 핵전쟁을 발발시켜 인류 절멸로 몰아갈지 모를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의 이재명 정부가 AI 산업을 핵심 성장 동력으로 설정하고, 전산업에 AI를 적용한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업무 자동화·무인화는 이미 불완전 고용을 일반화하고 있고, 안정된 일자리조차 고용 대란을 예고하고 있다. 


인류의 유산이자 노동자의 노동력으로 일궈낸 기술을 자본이 독점하여 이윤을 위해 사용하는 자본주의 시스템, 정부는 경제성장이니 국가경쟁력이니 하며, 천문학적 재정을 들여 자본을 지원하는 국가독점자본주의 시스템을 작동시키고 있다. AI로 표현되는 첨단기술이 전 산업에 적용되면 생산력은 고도로 높아진다. 그런데, 그 과실은 오직 극소수 자본의 것이 되지만 절대다수 노동자 민중은 더욱 빈곤해질 수밖에 없다. 생산이 오직 자본의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의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는 것이 되도록 재조직하는 것, 그것은 인류사의 세기적 과제다. 그것을 수행할 수 있는 주체는 절대다수 노동자 민중일 수밖에 없다. 그러한 의미에서 근본적인 ‘체제 전환’을 위한 노동운동의 전략 수립이 절실하다. 


한국의 노동자 민중운동은 지난 1980년대 이후 현재까지 그 궤적을 돌이켜 보고 현실을 진단해 볼 때, 근본적인 사회변혁의 전망을 상실하여 혼란 상태에 놓여있다. 이는 비단 한국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세계적 현상이었다. 1991년 쏘련의 해체를 계기로 근본적 사회변혁을 목표로 한 노동운동은 자본주의 체제 내로 녹아들고 말았다. 변혁적 노동운동은 경제주의적이거나 체제 내 지분 확보에 매달려 왔다. 유럽 각국의 복지사회 모델은 지속해서 후퇴를 거듭해 왔다. 그러나, 작금의 정세는 노동자 민중이 거대한 각성과 인류사적 임무를 자각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실업으로 인한 생존권적 위기, 전쟁 위기, 기후·환경 위기가 폭발의 임계점에 가까워지고 있다. 지금의 제국주의적 자본독재의 경쟁과 대립의 양상은 언제 인류를 절멸시킬지 모를 위험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AI를 둘러싼 논의는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 이후 세간의 시선을 끌었다. 그 이후 챗GPT가 출시되자 누구나 AI를 입에 올린다. 현대차가 인간형 로봇(아틀라스)을 개발하고 2028년부터 현장에 투입할 계획이 보도되자 대중적인 쟁점으로 떠 올랐다. 이재명 정부가 AI 산업을 핵심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며 정부가 나서서 전방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AI를 전 사회, 전 영역에 적용이 고용에 미칠 파급력은 가히 핵폭탄급 것임에 분명하다. 늦었지만, 노동운동 진영에서 깊이 있는 토론과 운동전략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절실하다. 필자도 공부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작성한다.



2. AI의 개념과 종류


인공지능(AI)은 인간의 지능적 활동(학습, 판단, 인식, 예측, 언어 이해 등)을 컴퓨터가 수행하도록 하는 기술이다. 즉, 데이터를 처리하여 의사 결정, 예측, 추천과 같은 결과를 생성하는 기계 기반의 시스템이다. AI는 컴퓨터비젼, 패턴인식, 자연어 처리 같은 기술들을 하나의 용어 아래 묶어놓은 포괄적 개념에 가깝다. 


“기존의 프로그램 알고리즘은 컴퓨터에게 처리 방식을 명시적으로 지정한다. 예컨대 A가 입력값이고 B가 결과값일 때 B=2×A라고 말이다. AI의 경우, 입력값 A를 잔뜩 제공하고 올바른 결과값, 즉 참값 B를 함께 제공한다. 그러면 컴퓨터가 입력값에 이런저런 연산을 해서 나름의 추측 값 G를 만든다. 만약 컴퓨터가 제대로 추측했다면, 그 추측 값이 참값과 일치할 것이다. 그러나 초기 과정에서는 추측이 틀릴 수밖에 없고, 추측 값 G와 참값 B 사이에 격차가 존재하고 이른바 손실함수는 0이 아닐 것이다. 즉 (G-B)≠0. 이는 모순이고 컴퓨터 내의 긴장을 낳는다. 하지만 이후 컴퓨터는 입력값에 대해 다른 추측 연산을 반복하면서 손실함수가 0에 가까워진다. 즉 (G-B)≈0. 그래서 AI는 일반적으로 학습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크리스티아노 사비유(서울시립대 천체물리학 연구교수), 2월 6일 어느 토론회에서 했던 발제 중

이 인공지능은 지능의 수준을 기준으로 약(弱)인공지능과 강(强)인공지능으로 구분된다. 약(弱)인공지능(Weak AI, Narrow AI)은 특정한 과업(task)을 수행하도록 설계된 인공지능이다. 정해진 영역에서만 작동하고 인간처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통계ㆍ패턴을 기반해서 계산한다. 예컨대, 번역기, 자율주행시스템, 현재의 ChatGPT 등 생성형 AI 등이다. 현재 존재하는 모든 AI는 약인공지능이다. 


반면에, 강(强)인공지능(Strong AI, AGI)은 인간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범용적 지능(General Intelligence)을 가진 인공지능이다. 여러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학습 능력이 있고, 스스로 문제정의나 목표 정의가 가능하다. 이것은 다시 인공일반지능(AGI)과 초지능(SI) 또는 인공초지능(ASI)으로 구분한다. 이것은 아직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은 연구단계에 있으며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다는 점에서 철학적·윤리적 논쟁이 매우 크다. 


인공지능은 또 사용되는 방식에 따라 에이젠틱(Agentic) 인공지능과 피지컬(Physical) 인공지능으로 구분된다. 에이젠틱 인공지능은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거나,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계획·판단·행동을 연쇄적으로 수행하는 AI다. 단순히 질문에 답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처리해 주는 주체처럼 작동한다. 챗봇이 “대화형 계산기”였다면, 에이전틱AI는 “수행비서”에 가깝다. 피지컬 인공지능은 AI가 물리적 세계(현실 공간)에서 직접 행동하는 형태다. 센서로 환경을 인식, 공간 판단, 물체 조작, 이동 및 물리적 작업 등을 수행하는 기계·로봇이다. 자율주행차량이나 산업용 로봇, 휴머노이드 로봇(아틀라스) 등이다. 에이전틱 인공지능과 피지컬 인공지능이 결합하면, 자율로봇 시스템, 완전자동화 시스템으로 발전한다. 


인공지능의 성격에 따라 분석형(Analytical) 또는 예측형(Predictive) 인공지능과 생성형(Generative)을 분류한다. 분석은 ‘판단’이라면 생성은 ‘표현’이라는 점에서 지금은 두 기능이 통합되어 작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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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AI 발전 과정


AI 연구는 1950년대 시작되었다. 인간의 논리를 기호로 표현하려는 시도가 진행되었으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1960~1970년대 인간의 전문가 지식을 규칙에 따라 코딩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의료진단시스템, 화학 분석 프로그램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규칙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현실 세계의 복잡성을 처리하지 못했다. 그 이후 1980년 후반까지도 기술적 한계와 투자 축소 등으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 


1990년~2000년대, 인간이 규칙을 입력하는 방식에서 ‘데이터 기반 학습으로 전환’하면서 통계ㆍ확률 모델이 발전했다. 1997년 IBM의 Deep Blue가 Garry Kasparov를 체스에서 이기면서 한 단계 성장했다. 이로써 머신러닝(기계학습)이 부상했다. 2010년대, GPU 발전과 빅데이터가 축적되면서 성과가 나타났다. 2012년에 제프리 힌튼 교수(토론토 대학) 연구팀이 개발한 딥러닝(인공신경망 기반 심층학습) 모델이 ‘세계 이미지 인식대회’에서 압도적 실력으로 우승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2014년에는 요슈아 벤지요 교수(몬트리올 대학) 연구팀에서 세상에 없던 이미지나 텍스트를 생성할 수 있는 모델(생성적 적대 신경망)을 개발했다. 2016년 구글 딥마인드에서 만든 알파고가 바둑계 고수 이세돌 9단을 이기면서 AI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다. 2022년 11월 오픈AI에서 텍스트를 생성하는 생성형 인공지능인 챗GPT를 출시했다. 그 이후 대규모 언어모델(LLM) 줄줄이 출시되고 있다. 오픈AI의 챗GPT, 구글의 제미나이, 앤트로픽의 클로드, 메타의 라마, xAI(일론 머스크)의 그록 등이 그것들이다. 또 텍스트 생성만이 아니라 이미지나 영상, 음성을 생성하는 모델도 출시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서로 다른 기능들을 연결한 멀티모달(Multimodal) 인공지능도 출시되고 있다. AI가 “판단”을 넘어 “창작” 영역으로 확장하는 추세다.



4. AI는 인간 노동의 산물


인공지능은 인간의 사고 과정을 재현함으로써 지능을 해결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AI는 무기 체계와 전쟁에 우선 이용된다. 점차 각종 생산과정에 투입하여 이윤 창출의 도구로 사용된다. 요즘은 업무에 광범위하게 이용할 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생성형 AI를 이용한다.


그 AI가 현실에서 작동하기까지 인간노동, 데이터, 집단지성, 자본의 핵심 요소를 빨아들여 통계적 예측치로 변환한다. AI의 개발은 전 세계 노동자들을 연결하여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이뤄진다. 이러한 인류의 자산과 기술을 자본주의적으로 이용하면 곧바로 자본의 이윤으로 전환한다. AI는 자본가를 비롯한 소수의 이익을 창출하고 그들의 지배력을 확고히 하는 도구가 된다. 


테크기업들은 AI의 가능성과 편의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AI가 발전하는 과정에 어마어마한 인간노동이 지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AI는 물질적 실체를 가지고 있다. 반도체 칩, 서버, 케이블 등이 지속적으로 추가되고, 유지·보수되어야 존재할 수 있다. 에너지원으로서 전력을 공급받아야 하고 서버를 식히기 위해 엄청난 물을 소비한다. 


기계는 전력과 물만으로 유지될 수 없다. AI 이면에서 기술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분투하는 인간노동에 의존하고 있다. 데이터 주석작업, 결과 검증, 알고리즘 조정 등 다양한 업무에 노동자들의 노동력이 지출되고 있다. 정교한 AI 소프트웨어도 수천 시간의 저임금 노동이 투입된 결과다. AI는 인간 지식을 포착하여 이를 머신러닝을 통해 학습한다. 기본적으로 AI는 훈련데이터에 의존하는 파생적 존재이다. 그 데이터를 통해서 자동차 운전, 사물 인식, 자연어 생성과 같은 다양한 활동을 출력한다. AI 기업들은 공동의 지식이 담긴 데이터를 특정기업의 자산으로 전환하고 이를 독점적 소프트웨어로 가공하여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자율주행 자동차 개발과정을 간략히 예를 들어보자. 회사는 프로젝트를 위해 공개된 데이터세트를 수집하고 필요한 정보를 선별한 후, 추가로 수천 시간 분량의 주행 영상 데이터를 구매한다.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AI 연구소 머신러닝 엔지니어들이 초기 자율주행 모델을 개발한다. 문제가 발생하면 데이터를 필리핀, 인도, 케냐 등지의 주석업체들과 계약한다. 수천 명의 주석 작업자들이 다양한 조건에서 운행되는 차량의 데이터를 수작업으로 분류하고 테그를 부착한다. 주석작업이 완료되면 머신러닝 엔지니어들이 검토한 후, 모델을 미세조정 한다.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회사의 AI 연구소는 막대한 연산 능력과 메모리, 저장공간 등의 컴퓨팅 자원을 아마존웹서비스(AWS)로부터 임대한다. 이렇게 개발된 모델이 여러 단계의 안정성 테스트를 거쳐 실제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에 장착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AI는 인간노동의 산물이다.



5. 이재명 정부의 AI 정책 비판 


1) 이재명 정부의 AI 정책

이재명 정부는 AI를 단순 기술이 아니라 국가 성장 전략의 중심 산업으로 설정했다. “AI 세계 3대 강국” 만들기가 그것이다. 이를 위해 총 100조원 규모 AI 투자를 결정했다. 올해 AI 예산을 작년보다 3배 이상 늘린 10조 원으로 편성하고, 민관 합동으로 최대 30조 원 규모의 투자를 추진한다. 


AI 인프라 구축 사업으로, AI 데이터센터 구축, 국가 AI 데이터 클러스터 조성, 5만 개 이상 GPU 확보, “AI 고속도로”(AI 인프라 네트워크) 구축, AI 혁신 허브 구축 등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대규모 AI 투자펀드 조성, 기반시설 구축, 법제를 지원하고, 민간자본은 기술개발과 산업화를 주도한다는 것이다. 또한 AI를 특정 산업이 아니라 행정, 교육, 의료, 교육, 제조업, 서비스업 등 국가 전체 시스템과 산업에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AI 산업 활성화를 위한 법·제도 전면 개편했다. 2025년 12월 30일,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금지된 것 외에는 AI 개발 허용한다는 “네거티브 규제” 도입이다. 


이재명 정부는 APEC 정상회담 기간에 한국을 방문한 빅테크 기업인들로부터 각종 AI 투자를 유치했다. 지난해 6월에 SK와 함께 7조 원 규모의 기반 시설 투자를 발표한 아마존웹서비스(AWS)는 추가로 7조 원을 더 투자하겠다고 약속했고, 엔비디아는 한국에 GPU 26만 장을 공급하기로 약속했다. GPU는 주로 AI를 학습시키는 데 사용하는 핵심 장비다.


아마존웹서비스(AWS)는 울산과 인천에 데이터센터를 짓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도 부산에 데이터센터를 구축했고 울산에도 증설할 계획이다. 오픈AI는 전남권에 데이터센터를 짓기로 SK와 합의했다. AI 데이터센터 하나는 중소 도시 한 곳과 맞먹는 양의 전력을 소비한다. 이런 어마어마한 AI 기반 시설이 한국에 우후죽순 들어설 예정이다. 이 때문에 이재명 정부는 신규 원전 2기를 새로 짓기로 결정했다. 이들 기업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에너지 고속도로’를 밀어붙이고 있다. 서남 해안권에서 수도권까지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송전선로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곳곳에서 주민들이 투쟁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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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재명 정부의 정책 비판

이재명 정부는 AI 정책에 대해서 국가경쟁력 강화, 생산성 향상, 국민 전체의 이익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구조에서 AI는 본질적으로 노동절감, 생산성 발전과 동시에 자본의 노동 지배 강화 수단으로 기능한다. 이는 모두 자본의 이윤 확대를 위한 것이다. 기술의 자본주의적 이용, AI를 생산과정에 적용하면, 사무 자동화, 생산 자동화, 관리 자동화로 귀결된다. 그 결과는 상대적 과잉인구 증가, 즉 실업과 불안정 노동의 증가다. 생산성 향상은 노동자 수 줄이기이고 노동강도 증가를 의미한다. ‘생산성’ 증가로 인한 이윤은 곧 자본가의 몫이다. “국민 전체 이익”이 아니라 독점자본의 프로젝트다.


국가의 AI 투자는 공공의 비용으로 사적 이윤을 지원하는 것이다. 국가가 100조원 투자해서 AI 인프라를 구축하고, GPU 확보와 데이터센터를 건설 한다. 규제를 완화하고 인재를 공급한다. 투자 비용은 국가가 부담(국민 세금)하고 대기업은 막대한 이윤을 획득하는 구조다. 이는 국가와 독점자본이 융합한 국가독점자본주의 본모습이기도 하다. 


이재명 정부의 AI 3대 강국 운운은 “국민 전체의 이익”이 아니라 그 반대다. AI는 생산, 물류, 사무 등 모든 분야에 적용하여 노동자를 생산과정에서 몰아내고 무인화를 추구하고 있다. AI가 실제 업무, 생산과정에 투입되면, 업무를 표준화, 단순화하여 기술적 숙련도를 떨어뜨린다. 더구나 이재명 정부는, AI 적용은 행정, 교육, 의료, 교육, 제조업, 서비스업 등 국가 전체 시스템과 산업에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제조업뿐 아니라 금융권, 공공부문 할 것 없이 고용대란을 예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AI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노동통제 기술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작업 속도 측정, 생산성 추적, 행동 감시, 알고리즘 관리 등이다. 이는 플랫폼 노동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다. 배달 노동, 물류 노동, 콜센터 노동 등에서 AI는 “디지털 관리자” 역할 수행한다. 결국 노동자로부터 더 많은 가치를 쥐어짜는 구조로 이어진다. 하나의 예만 들면, 배민·쿠팡 등 알고리즘의 통제를 받는 배달노동자(라이더)가 최소한의 수익을 확보하려면, 하루 12시간은 일해야 하는 실정이다. 170년 전 산업혁명 당시에 10시간 노동제가 쟁점이 되었는데, 오늘날 장시간 노동은 천만 명에 육박하는 온라인 기반 노동자의 현실이 되어 있다. 


이재명 정부는 “AI 성과를 국민과 공유”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기만이요 거짓이다. 왜냐하면 AI, 데이터, 이윤이 모두 기업(자본) 소유이다. 이러한 생산수단을 자본가 계급이 배타적·독점적으로 소유한 자본주의 사회가 유지되는 한, AI 등 기술을 생산에 적용할 때 그 혜택은 자본가의 것으로 돌아간다. 그 혜택의 근본적 사회 공유는 극히 제한적이다. AI의 본질적 문제는 기술 자체가 아니라 누가 소유하는가에 따라 그 성격이 결정이 나기 때문이다. 자본이 소유하면 기계가 노동자를 대체하여 극심한 불평등을 초래한다. 사회(노동자 민중)가 소유하면 노동시간의 감소와 삶의 질을 풍요롭게 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 만이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 자본주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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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기술발전, AI의 성격과 영향


현대차가 2028년부터 인간형 로봇을 현장에 투입할 계획을 발표했다. 현대차 노조가 지난 1월 22일자 소식지를 통해, ‘노사합의 없이 아틀라스 현장투입 반대’ 입장을 냈다. 이를 둘러싼 쟁점이 언론에서 크게 회자하였다.  이재명 대통령은 수석보좌관회의 모두발언에서 “인공지능 로봇들이 스스로 판단하면서 데이터를 분석해 가면서, 24시간 먹지도 않고 지치지 않고 일하는 그런 세상이 곧 오게 돼 있다”, “그러면 생산수단을 가진 쪽이 엄청난 부를 축적할 텐데, 대다수 사람은 일자리를 찾기가 어려울 것”이라며  “거기에 대응해야 한다.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19세기 산업혁명 시기에도 기계파괴운동이 있었다면서 “거대한 수레를 피할 수 없다. 빨리 적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01301는 것이다. 이 사회에 전반적으로 퍼져 있는 논리이기도 하다. 이러한 논리의 이면에는 기술(AI)의 자본주의적 이용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재명도 AI의 자본주의적 이용이 노동자들의 고용에 미칠 파괴적 영향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 답은 “어쩔 수 없다”, “빨리 적응해야 한다” 이다. 지난해 개봉한 박찬욱 연출 《어쩔 수가 없다》가 바로 떠오른다. 매우 빠르게 전개될 지옥도에 ‘적응’하라는 것이다. 오직 이윤을 목적으로 생산하는, 기술(AI)을 생산에 적용하는 자본주의가 영원하다는 듯이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도 답답함은 마찬가지다. 현대차가 인간형 로봇을 2028년부터 생산현장에 투입한다는 계획이 발표되었을 때 노동조합의 반응을 보자. 현대차 노조는 “해외 물량 이전ㆍ신기술 도입(로봇자동화), 노사합의 없는 일방통행은 용납할 수 없다”는 제하의 유인물을 현장에 배포했다. 현대차 노조의 단체협약에는 ‘신기술 도입 시 노조와 합의’하게 되어 있다. 이에 근거한 당연한 주장이다. 그런데, 노조는 고용위기가 코앞에 닥쳤으나 ‘노사합의’를 인간형 로봇 도입의 조건으로 한 입장을 냈을 뿐이다. 어느 현대차 노조 위원장 출신 활동가는 모 단체에서 내는 관련 글에서, 노동자는 풍차에 맞서는 돈키호테가 아니라며, “분배 정책을 향한 새로운 사회계약을 쓰자”라고 주장한다. 이 얼마나 무기력한가! 이는 현장활동가들의 인식의 혼란을 반영한다. 이뿐이랴, 지식인입네, 학자입네 하는, 이른바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논지의 대부분은 현란한 수사들이 동원되지만, 기술의 자본주의적 이용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 결과 자본에 봉사하는 나팔수 역할을 한다.


산업혁명 시기, 기계가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몰려 기계파괴 운동이 격렬하게 상당기간 전개되었다. 이에 대해  맑스는 ≪자본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19세기의 첫 15년 동안, 특히 증기직기의 사용에 기인한, 영국의 매뉴팩춰 지역들에서의 러다이트(Luddite) 운동이라는 이름 하의 대량의 기계 파괴는, 씨드머쓰(Sidmouth), 캣슬레이(Castlereagh) 등의 반(反)자코뱅(anti-jacobin) 정부에 극히 반동적인 강압조치들을 취할 구실을 주었다. 노동자가, 기계장치와 그 자본주의적 이용을 구별하고, 그리하여 자신의 공격을 물질적 생산수단 그 자체로부터 그 사회적 이용 형태로 바꾸는 것을 배우기까지는 시간과 경험이 필요했다.” 자본론, 채만수 역, 제1권, 제3분책, pp. 704-705.

“노동자가, 기계장치와 그 자본주의적 이용을 구별”하는 것, “생산수단 그 자체로부터 그 사회적 이용 형태로 바꾸는 것을 배워”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노동자계급이 온갖 투쟁 과정에서 눈앞의 전과(戰果)가 아니라 계급적·정치적 단결을 확장하여, 소수 독점자본의 수중에 있는 국가권력을 확보하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물질적 생산수단을 소수 자본의 이윤이 아니라 그 사회 구성원의 풍요롭고 인간다운 삶을 목표로 이용하라는 것이다. 노동운동이 자본주의 모순을 극복하는 인류사적 임무를 자각하고 근본적인 변혁의 주체로 조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노동운동의 근본 방향과 맞닿아 있다. 


종종 산업혁명 시기에 숙련공의 실업과 임금 하락 등이 진행되었지만, 결국은 고용이 확대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새로운 기술을 새로운 고용을 창출하는데, AI 시대에도 그와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증기기관이 철도 산업을 발전시켰고, 인터넷이 IT산업을 발전시켜 고용을 확대했다는 것이다. 이는 새로운 일자리에 재교육을 거쳐 배치될 수 있을 것이란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그러한 논리는 현실을 호도하여 자본에 복무하는 자들의 기만이다.


자본주의에서 기계의 발명과 이용의 목적은, 노동력 사용을 기계로 대체하기 위한 동기에서 진행되었다. 기계 도입보다 노동력 사용이 저렴할 경우에는 노동자를 고용한다. 그러나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저항과 임금 인상 요인에 대응하여 신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적용한 기계로 대체해 온 역사다. 더구나 산업혁명 시기와 현대의 조건은 완전히 다르다. 지금은 전 세계가 더 이상 자본주의적 생산을 확장할 곳이 없을 정도로 일반화되었다. 더구나, 기술이 고도로 발전한 현대 자본주의는 “고용 없는 성장”이 특징이다. AI의 전면 적용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벌써 곳곳에 불안정·불안전 고용이 심화되고 있다.

맑스는 《자본론》에서 기계의 자본주의적 이용을 마치 변할 수 없는 조건인냥 말하는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을 비판하고 있다. 


“기계장치는 그 자체로서 고찰하면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반면에, 그것이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되면 노동일을 연장하고, 그 자체는 노동을 경감하는 반면에,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되면 노동의 강도를 증대시키며, 그 자체로서는 자연력에 대한 인간의 승리지만,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되면 자연력에 의해서 인간을 억압하고, 그 자체로서는 생산자의 부를 증대시키지만,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되면 그를 빈민화는 등등이기 때문에, 부르주아 경제학자는 간단히, 기계장치를 그 자체로서 고찰하면, 저 명백한 모순들은 일상적 현실의 단순한 외관일 뿐이며, 그 자체로서는, 따라서 또 한 이론적으로도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매우 정확하게 증명한다고 단언한다. 그리하여 더 이상의 어떤 머리도 아껴서 전혀 쓰지 않을 뿐 아니라, 나아가서는 기계장치의 자본주의적 사용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기계장치 그 자체와 싸우는 어리석음을 자신의 반대자에게 떠넘기고 있다.” 같은 책, p.726.

 무인 생산 시스템은 확대일로다. 과거 산업혁명이 수십년에 걸쳐 진행되었다면, 오늘날 기술 발전과 그 적용은 매우 빠르게 확산된다. “고용없는 성장”으로 표현되는 생산력 발전은 자본주의라는 그릇으로 담아낼 수 없다. 그 결과는 “자본주의 저승사자”가 될 것이다. 자본의 유기적 구성도는 더욱 높아져 이윤율이 경향적으로 낮아진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이윤량으로 승부하려 한다. 이 때문에 AI 산업을 선점하려는 피 터지는 자본 간·국가 간 경쟁, 기술과 원료, 에너지, 수송망을 둘러싼 제국주의 경쟁이 세계대전의 문턱까지 와 있는 정세다. 고도로 발전한 생산력, 그로부터 쏟아지는 상품을 누가 다 소비할 수 있단 말인가? 실업과 반실업의 만연은 자본가계급과 피지배 노동자계급 간의 투쟁을 격화시킬 것이다. 고도로 발전한 생산력을 자본주의 소유관계·생산관계·생산양식으로는 담아낼 수 없다. 


다른 한편, AI 등 기술 발전, 고도의 생산력은 곧 사회주의의 토대가 된다는 점이다. 생산의 무인화는 경제학적으로 점차 상품의 (교환)가치가 0에 수렴한다. 즉, 필요한 것은 무료 혹은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구입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노동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도 사회적으로 필요한 것을 충분히 생산할 수 있다. 생산수단을 사회적 소유를 바꾸면, 발전한 생산력은 인류의 풍요로운 삶을 위해 이용될 것이다.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은 해소된다. 오직 이윤 확보를 위한 경쟁과 대립, 그로부터 발화하는 전쟁위협은 사라질 것이다. 인간과 자연의 선순환적 물질대사가 복원될 것이다. 기후·환경 위기를 점차 해소해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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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노동운동 과제


1) 자본주의 ‘고쳐 쓰기 노선’ 폐기, 근본적 변혁이 희망이다.

‘자본주의 고쳐쓰기’로는 노동자 민중이 처한 실업·반실업 등 생존권적 위기, 핵전쟁으로 인한 인류 절멸 위기, 기후·환경위기를 극복할 길이 없다. 자본독재를 극복하고 대안사회, 노동자국가 건설의 전망을 다시 살려내고 벼리고 구체화해야 한다. 노동운동은 근본적인 변혁의 전망하에 총노선을 수립하고 일관된 정치활동,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대안사회 건설의 역량과 물리적 힘을 축적해야 한다. 정부의 ‘국가 경쟁력’이니 하는 자본의 프로젝트에 빙의되어 국가주의(애국주의)에 경도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해야 한다. 자본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노동자 민중의 프로젝트에 충실해야 한다.


2) 노동운동의 정치적·계급적 지도부가 절실하다.

자본주의 모순이 여러 방면에서 노골적으로 표출되고 있는 작금의 정세에서, 계급 적대의 온갖 현상을 노동자계급의 관점에서 분석·종합하여 해석해 내고, 자본의 이데올로기를, 소부르주아적 혼란을 타격·극복하는 것이 핵심적 과제다. 이를 해 낼 수 있는 주체, 그것을 실천할 활동가 대오 구축이 노동운동의 집중적인 과제다. 


민주노총부터 자본의 정치부대인 민주당에 기대고 기웃거릴 것이 아니라, 이러한 활동을 기획해야 할 것이다. 재정을 재정과 역량을 투입하여 체계적으로 자본의 프로젝트를 분석·비판하고 대중의 것이 되도록 선전·선동·조직해야 한다. 존재 조건이 다른 노동자들이 공동의 과제를 중심으로 단결과 연대를 확장할 수 있도록 전술 방침을 구체화해야 할 것이다. 


3) 정치활동, 계급정치의 상(像)을 재정립해야 한다

‘계급정치’의 요체는 노동자대중의 계급적·정치적 각성, 단결과 연대의 확장, 노동자 민중권력을 쟁취하고 노동자국가 건설의 물리력을 만드는데 복무하는 제반 활동이다.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 그로부터 제기되는 정치활동을 ‘제도권 중심의 정당’으로 한정하는 정치활동의 상을 뒤집어엎어야 한다. 제도권 정치도 이러한 ‘계급정치’의 관점에서 실천할 때 의미가 있다.


세계적·국내적 자본운동, 온갖 현상을 매시기 계급적 관점에서 분석·종합하여 노동자의 것으로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선전·선동·조직 일반의 사회주의적 정치활동을 모든 연단과 매체를 이용하여 전개해야 한다. ‘비판의 무기’를 벼리지 않고서 ‘무기의 비판’은 불가능하다. 이것을 전면화할 수 있는 조직이 곧 ‘노동자계급의 당’이다. 


우선 ‘노동자계급 정의’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 기존에는 주로 노동자계급을 집단적 노사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노동자로 인식했으나, 플랫폼·프리랜서·특수고용·돌봄 노동 등 불안전 고용을 두루 포함해야 한다. 1998년 이후 ‘비정규직’이 급속도로 늘어났다면, 지금은 특수고용 형태가 확장되는 추세다. AI 등 업무자동화·무인화가 진척되면서 디지털 알고리즘의 통제를 받는 고용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노동자계급 내부에 분할통제가 관철되었다는 점에서 존재 조건이 다른 처지에 있는 노동자(제조업, 범공공부문. 비정규·특수형태고용 등)의 각각의 투쟁 쟁점과 공동투쟁의 고리를 찾아내는 연구와 전술방침 개발이 절실하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변혁적 지향을 명확히 하는 활동 주체들이, 구체적 문제에 구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협력적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고려해 볼만하다. 


4) ‘대안사회’의 상(像)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20세기 사회주의의 패배 이후 노동운동진영은 ‘대안사회’에 대한 전망을 상실했다. 그로부터 사회주의적 정치의 실종으로 이어졌다. 변혁적 전망을 다시 장착해야 하는데, 어떻게 그 가능성을 열 수 있을지에 대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 한 방법으로 대안사회에 대한 풍부한 상에 관한 연구가 필요하다. 20세기 노동자국가 운영의 경험을 재해석하여 자양분을 취하고 참고할 만한 모든 것으로부터 설득력있는 대안사회의 상을 정립해야 한다. 그것은 집단적 토론을 통해 계속 질적 상승을 도모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분야별 대안과 전망을 제시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연구역량의 결집과 이에 대한 프로젝트 가동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대안사회의 상과 전망을 장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프로젝트는 누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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