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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 철학 강좌 ― 제3강, 물질과 의식의 관계 문제 (유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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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신문
2026-06-17 15:37 4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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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길 (편집위원)


* 이 글은 노동사회과학연구소 월간지 <정세와노동>에 연재되고 있는 글입니다.- 편집자 주


[차례]


제1강 철학을 시작하며

제2강 철학의 근본문제

제3강 물질과 의식의 관계 문제 (유물론)

Ⅰ. 세계의 본원과 변혁의 논리

Ⅱ. 물질

Ⅲ. 의식 - 존재의 반영에서 존재의 변혁으로

  1. 의식의 기원: 물질의 자기 발전으로서의 반영

  2. 의식의 담지자: 인간 뇌의 고유성과 세 가지 이론적 편향의 비판

  3. 의식의 내적 구조: 감각, 감정, 개념의 변증법과 사상의식의 핵심적 지위

  4.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의식의 사회적 기원과 물질적 토대

  

Ⅳ. 철학에서 ‘제3의 길’은 없다

Ⅴ. 인식론과 진리론

제4강 유와 무의 관계 문제 (변증법)

제5강 인간과 세계 관계 문제 (실천론)



Ⅲ. 의식

- 존재의 반영에서 존재의 변혁으로



1. 의식의 기원: 물질의 자기 발전으로서의 반영


1) 반영 능력의 역사적 발전: 물질에서 의식으로의 도약

의식은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진 신비로운 실체가 아니다. 그것은 물질이 단순한 형태에서 복잡한 형태로 진화함에 따라 나타나는 반영(Reflection) 능력의 질적 도약 과정이다. 맑스주의 철학은 의식을 고도로 정교화된 물질(인간의 뇌)의 기능이자, 사회적 노동과 언어의 산물로 규정한다. 이 규정은 의식의 물질적 기원을 확인하는 동시에, 의식이 단순한 물질적 반응과 질적으로 다른 차원임을 선언하는 것이기도 하다.


반영 능력의 발전은 다음 네 단계를 거친다.


제1단계, 무생물적 반영. 거울이 빛을 반사하거나 바위가 열에 팽창하듯, 자극에 대해 물리적ㆍ화학적으로만 반응하는 원초적 기초 단계다. 여기에는 어떠한 주체적 선택도, 정보의 축적도, 미래를 향한 지향도 없다. 물질은 외부 작용을 받아 상태가 변할 뿐, 그 변화를 자기 내부에 유의미한 정보로 보존하지 못한다.


제2단계, 생물학적 반영. 단세포 생물의 자극 반응성에서 고등 동물의 감각과 기억으로 발전한다. 이것은 본능에 기초한 환경 적응의 단계로, 동물적 심리가 형성된다. 동물은 구체적 자극에 반응하고 조건 반사를 형성하지만, 환경의 내적 법칙을 파악하여 그것을 목적의식적으로 변혁하지는 못한다.


동물의 활동은 자극에 대한 본능적 반응인 ‘감각’과 ‘심리’의 영역에 머문다. 파블로프(I. P. Pavlov)는 이를 ‘제1신호계’라는 개념으로 정리한 바 있다. 이 개념은 소비에트 생리학 전통에서 표준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오늘날의 인지신경과학에서는 그 도식적 성격이 지적되기도 하지만, 감각 수준의 반응과 언어 매개 사유를 구분하려는 기본 문제의식 자체는 여전히 유효하다.


제3단계, 의식의 탄생. 인간 조상의 등장과 함께 반영 능력은 질적으로 도약한다. 엥겔스가 ≪자연의 변증법≫ 수록 글 〈원숭이가 인간으로 되는 데서 노동이 한 역할〉에서 지적했듯, 노동은 손의 해방과 뇌의 비약적 발달을 가져왔다. 엥겔스의 핵심 명제를 요약하면 이렇다. 손은 노동의 기관일 뿐만 아니라 노동의 산물이며, 노동과 언어가 뇌 발달을 촉진한 두 가지 본질적 자극이었다. 공동 노동은 도구 제작을 요구했고, 이는 뇌의 복잡성 증가를 유도했다. 동시에 협동 노동은 언어의 필연적 발생을 촉진했다. 파블로프가 ‘제2신호계’라고 부른 것, 곧 언어를 매개로 한 추상적 사유 능력은 직접적 자극을 넘어서 보편적 개념을 조작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구체적 사물을 추상적 ‘개념’으로 고정함으로써 현재에 부재하는 미래를 설계하는 사유가 가능해진 것이다.


제4단계, 사회적 의식의 형성. 의식은 개인의 뇌를 넘어 사회적 관계로 확장된다.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변화에 따라 도덕, 정치, 철학 등 의식의 내용이 역사적으로 규정되며, 인간은 비로소 자신을 객관화하여 집단과 역사 속에서 ‘나’를 바라보는 자아의식을 갖게 된다. 의식은 개인적 인식 행위를 넘어 계급적ㆍ역사적 성격을 띠기 시작한다.


현대적 맥락: 디지털 네트워크와 의식의 외연. 오늘날 의식은 디지털 네트워크와 결합하여 정보의 저장, 처리, 전달 능력을 비약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 확장은 도구적 보조의 차원이지, 의식 자체의 주체가 인간에서 기계로 이행한 것이 아니다. 인공지능과 집단 지성은 인간 인식의 물질적 도구를 고도화한 것이며, 의식의 담지자는 여전히 살아 있는 인간이다. 이에 대한 심층적 논의는 제7장에서 별도로 다룬다.

이 네 단계의 발전 경로에서 핵심적인 것은, 각 단계의 이행이 양적 변화의 점진적 축적을 통한 질적 도약이라는 점이다. 무생물의 물리적 반응에서 생물의 자극 반응성으로, 동물의 심리에서 인간의 의식으로의 전환은 모두 물질 자체의 내적 모순이 일정한 조건하에서 폭발하여 새로운 질적 수준으로 이행한 결과다. 의식은 물질 바깥에서 물질에 부가된 것이 아니라, 물질 자신의 발전이 도달한 최고의 형태다.


2) 의식의 본질: 사회적 노동과 언어의 결정적 힘

동물의 뇌가 인간의 의식으로 진화할 수 있었던 결정적 동력은 사회적 노동이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이 고립된 개인의 뇌 안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공동의 실천 속에서 타인과의 관계를 매개로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공동 노동은 세 가지 결정적 결과를 낳았다. 첫째, 도구의 제작과 사용은 자연에 대한 능동적 개입을 가능케 하여, 자연의 인과 법칙을 경험적으로 체득하게 했다. 둘째, 협동의 필요는 의사소통 수단으로서 언어를 발생시켰고, 언어는 구체적 감각 경험을 추상적 개념으로 고정하여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사유를 가능케 했다. 셋째, 공동 노동은 필연적으로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여, 의식을 처음부터 사회적 성격을 띤 것으로 만들었다.


맑스는 이렇게 정식화했다. “의식은 의식된 존재 이외의 다른 것일 수 없으며, 인간들의 존재는 그들의 현실적 생활 과정이다.”(맑스ㆍ엥겔스, ≪독일 이데올로기≫) 의식은 주관적인 환상이 아니라 철저히 사회적 산물이다. 인간의 뇌를 가졌더라도 사회적 관계에서 고립된 ‘격리 아이’가 인간다운 의식을 발달시키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3) 의식 개념의 층위 구분: 신경생물학적 의식과 철학적 의식

여기서 ‘의식’이라는 용어의 층위를 엄밀하게 구분해야 한다. 이 구분은 이후 전개될 ‘의식’과 ‘의식성’의 구분을 예비하는 중요한 이론적 전제다.]


신경생물학에서 의식(consciousness)은 신경세포의 작용에 의한 각성(awareness) 상태를 폭넓게 가리킨다. 안토니오 다마지오가 말한 의식의 뿌리, 즉 생존을 위한 내부적 ‘신체 지도’와 ‘느낌’이 이 수준에 해당한다. 그것은 ‘살아 있음을 느끼는 수준’이다.


반면 철학에서 의식은 사회와 역사 속에서 세계를 파악하고 삶의 방향을 자각하는 고차적 인식, 곧 살아 있는 인간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수행하는 주체적 사유 활동에 한정된다. 이것은 외부 세계의 법칙을 파악하고 이를 인간의 목적에 맞게 변혁하는 능동적 반영을 의미한다.


이 구분을 혼동하면 두 가지 오류에 빠진다. 하나는 모든 신경 반응을 ‘의식’으로 격상시키는 오류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사유를 단순한 생리 과정으로 격하시키는 오류다. 전자는 물활론으로, 후자는 속류 유물론으로 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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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의식의 담지자: 인간 뇌의 고유성과 세 가지 이론적 편향의 비판


1) 인간 사유의 특수성


의식은 신비로운 영적 실체가 아니라, 고도로 발달한 물질인 ‘인간 두뇌’의 고유한 속성이자 기능이다. 인간의 뇌는 세포의 고도 분화와 대뇌 피질의 복잡한 구조를 통해 타 생명체와 질적으로 구분되는 정신 활동을 수행한다.


인간의 뇌는 외부 자극에 반응하는 ‘제1신호계(감성적 반영)’를 넘어, 언어를 매개로 추상적 사고를 수행하는 ‘제2신호계(이성적 반영)’를 갖추고 있다. 현대 인지과학에서는 이 구분을 보다 정밀하게 재구성하여, 전(前)언어적 지각 처리와 언어 매개적 개념 처리의 차이로 논의하고 있다. 핵심은 동일하다. 인간은 구체적 이미지를 넘어 보편적 개념의 세계를 구축하며, 이 능력이 인간 의식의 질적 고유성을 이룬다는 것이다.


모든 개념은 개별, 특수, 일반의 통일로 이루어져 있으며, 판단과 추리라는 사유 형식을 통해 사물 현상의 내적이며 본질적이며 필연적인 연관들을 밝혀낸다. 사유 형식은 끊임없이 계속되는 실천 과정에서 객관 세계의 사물 현상들의 연관이 사유에 반영되어 고착된 것이다.


사유의 내용도 변증법적으로 발전한다. 그것은 낮은 데로부터 높은 데로, 단순한 것으로부터 복잡한 것으로, 추상적인 것으로부터 구체적인 것으로, 불완전한 지식으로부터 완전한 지식으로 상승 발전한다. 사유의 이러한 변증법적 성격은 그것이 변증법적으로 발전하는 객관적 사물 현상들에 대한 반영이라는 것과 관련된다.


2) 세 가지 이론적 편향에 대한 비판


의식의 본질을 올바르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이론적 편향을 경계해야 한다.


첫째, 물활론(Hylozoism)에 대한 비판. 모든 물체에 의식이나 생명력이 깃들어 있다는 관점은, 의식이 고도로 조직된 특수 물질인 ‘뇌’의 기능임을 간과하여 관념론에 빌미를 제공한다. 돌에도, 강물에도, 분자에도 의식이 있다면, ‘의식’이라는 범주 자체가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하는 공허한 개념으로 전락한다. 만약 돌이나 강물, 심지어 무기물인 분자에게까지 의식이 깃들어 있다고 가정한다면, ‘의식’은 더 이상 특정한 물질적 운동의 형태를 지시하는 과학적 범주가 될 수 없다. 이는 마치 모든 것이 ‘빛’이라면 ‘어둠’과 ‘그림자’를 구별할 수 없게 되어 빛이라는 개념 자체가 의미를 잃는 것과 같다. 의식이라는 범주는 물질이 무기적ㆍ생물학적 진화를 거쳐 ‘고도로 조직된 뇌’라는 특수 물질로 비약했을 때 비로소 출현하는 새로운 질적 속성이다. 이를 일반 물질의 보편적 속성으로 남발하는 것은, 의식과 물질의 질적 차이를 지워버림으로써 결국 만물에 영혼이 있다는 신비주의적 관념론에 문을 열어주는 꼴이 된다. 의식은 물질 일반의 속성이 아니라, 고도로 조직된 특수한 물질의 기능이다.


둘째, 속류 유물론에 대한 비판. 칼 포크트(Karl Vogt)는 “뇌는 위장이 위액을 분비하고 간이 담즙을 분비하며 신장이 소변을 분비하듯 사고를 분비한다”고 주장하며(≪맹신과 과학≫, Köhlerglaube und Wissenschaft, 1855) 의식을 단순한 생리적 분비물로 환원했다. 그러나 의식은 뇌라는 물질의 속성(기능)이지 물질 그 자체가 아니다. 담즙은 물질적 실체이지만 사상은 물질적 실체가 아니라 물질 세계의 관념적 반영이다. 의식을 물질과 동일시하면, 의식의 고유한 능동성, 세계를 인식하고 변혁하는 힘이 소거된다. 바로 여기에 속류 유물론의 치명적 결함이 있다.


셋째, 생기론적 신유물론(Vital New Materialism)에 대한 비판. 이 조류는 비인간 사물에도 고유한 ‘활력(vitality)’과 ‘행위능력(agency)’이 있다고 본다. 이것은 고대 물활론의 세련된 현대판이다. 물론 모든 물질에는 인과적 효력이 있다. 바람은 나무를 쓰러뜨리고, 바이러스는 세포를 파괴한다. 그러나 인과적 효력과 목적의식적 행위는 질적으로 다른 범주다. 생기론적 신유물론은 인과적 효력 일반을 ‘행위능력’으로 격상시킴으로써 자연 과정과 인간의 사회적 실천 사이의 질적 차이를 지워버린다. 모든 것에 행위능력이 있다면 아무것도 특별한 책임을 지지 않게 되고, 역사를 변혁하는 인간의 주체적 역할은 용해된다. 의식은 모든 물질에 편재하는 ‘활력’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인간이 사회적 노동을 통해 획득한 고유한 능력이다.


관념론이 의식을 신비화하고 속류 유물론이 의식을 기계적 반영으로 치부했다면, 변증법적 유물론은 의식을 ‘사회적 실천(노동)과 언어를 매개로 한 고도화된 물질의 기능’으로 정립했다. 의식은 물질의 고도화된 속성이지, 물질 그 자체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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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의식의 내적 구조: 감각, 감정, 개념의 변증법과 사상의식의 핵심적 지위


1) 의식의 세 층위: 안테나, 엔진, 나침반 그리고 무의식이라는 거대한 바다


의식은 뇌의 물리적 기능에 기반하지만, 뇌라는 기관 내부에 고립되어 발생하지 않는다. 의식의 본질은 인간이 노동과 실천을 통해 외부 세계와 부딪칠 때, 그 객관적 존재를 주체적으로 반영하여 머릿속으로 옮겨놓는 역동적 과정에 있다. 이러한 의식의 구조는 세 가지 층위의 상호작용으로 완성된다.


감각(Sensation) – 인식의 안테나. 외부 세계의 물리적 자극을 수용하는 최전선의 창구다. 색, 모양, 소리 등의 물리적 속성을 뇌로 전달하는 ‘안테나’ 역할을 하며 모든 의식의 시발점이 된다. 감각 없이는 어떠한 의식도 성립할 수 없다. 그러나 감각만으로는 아직 가공되지 않은 ‘인식의 원재료’에 불과하다.


감정(Emotion/Feeling) – 가치 평가의 엔진. 감각과 개념을 잇는 핵심 고리다. 입력된 정보가 나의 생존과 실천에 유익한지 해로운지를 즉각 판별하여 가치를 부여한다. ‘이 정보는 위험하다(공포)’, ‘이 정보는 유익하다(기쁨)’ 등 즉각적 판단과 행동의 추동력이 감정에서 나온다. 감정은 수많은 감각 중 무엇에 집중할지 결정하며, 이성적 사유로 이행하기 위한 필연적 통로이자 실천을 추동하는 에너지원이 된다.


개념/이성(Concept/Reason) – 법칙의 나침반. 감정에 의해 선별된 정보를 추상화하고 보편적 법칙으로 정립하는 단계다. 사고는 감각적 자료와 정서적 반응을 언어와 논리로 정식화한다. 당장의 느낌을 넘어 사물의 내적 연관을 파악하고 장기적 계획을 수립하는 나침반 역할을 한다. 개념적 사고는 인식을 완성하고, 이를 다시 변혁적 실천으로 되돌려 보낸다.


무의식(Unconscious/Subconscious) – 의식의 빙하를 떠받치는 심해. 감각, 감정, 개념 이 세 층위는 수면 위로 드러난 빙산의 일각이다. 무의식은 과거의 경험, 습관화된 지식, 억눌린 욕망이 응축된 거대한 저장고로서, 감각이 무엇을 포착할지(지각의 선택성), 감정이 어떤 방향으로 터져 나올지(정서적 반응), 이성이 어떤 논리를 선호할지를 배후에서 결정한다. 무의식은 의식의 모든 활동이 자동화되고 내면화된 결과물인 동시에, 의식의 명령 없이도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거대한 관성이자 잠재적 동력이다.


2) 의식의 형태론적 구분: 지식, 감정의식, 사상의식

의식의 세 층위(감각, 감정, 개념)가 의식의 일반적 작동 방식에 대한 설명이라면, 형태론적 구분은 의식의 ‘내용’이 인간의 활동을 어떻게 규제하는지를 밝힌다. ‘의식의 형태론적 분석’이란, 의식을 단순히 ‘내용’(무엇을 생각하는가)으로만 보지 않고, 그 형태(형식, 구조) 자체를 분해해서 분석하는 방법을 뜻한다. 형태론(morphology)이라는 말은 대상의 본질적인 구조ㆍ형식ㆍ유형을 체계적으로 분류ㆍ해부하는 접근이다.


여기서는 의식(consciousness)이라는 현상을 그 구조에 따라 세 가지 서로 다른 ‘형태’로 나누어 분석한다. 그러나 의식의 형태론적 분석은 단순한 분류가 아니라, 의식이 어떻게 실천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 구조 분석이다. 이 분석은 의식의 수동적 단계(지식ㆍ감정)에서 능동적ㆍ실천적 단계(사상)로의 상승을 명확히 드러냄으로써, 의식이 “단순한 인식론적 의식”이나 “감정적 반응”에 머무르는 한계로부터 벗어나 실천적 주체로서의 의식을 밝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지식(Knowledge) – 객관 세계의 인식론적 반영. 객관 세계의 속성과 법칙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인식론적 형태이다. 과학적ㆍ객관적 지식에 해당한다. 감각과 이성의 협동으로 형성되나, 지식 자체에는 가치 판단이 결여되어 있다. 동일한 원자력 지식이 발전소에도, 핵무기에도 쓰일 수 있듯이 지식은 수단적 성격을 띤다.


감정의식(Emotional Consciousness) – 가치 평가의 정서적 반영. 대상과 인간 욕망 사이의 관계를 정서적으로 반영하여, 세계가 나에게 어떤 가치ㆍ의미를 지니는지 느끼는 정서적 형태이다. 이는 ‘가치의 즉자적 표현’으로, 주체의 이해관계에 따라 기쁨, 분노, 슬픔, 공포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 정서들은 모두 주체와 대상 사이의 이해관계를 신체적ㆍ심리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사상의식 – 의식의 핵(Nucleus). 세계를 ‘이대로 두면 안 된다. 이렇게 되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그 판단에 따라 자신의 실천 방향을 세우는 형태이다. 사상의식이란 주체의 요구와 이해관계에 대한 자각이며, 이를 실현하려는 목적 지향적 태도다. 사상의식은 단순한 지식과 감정을 넘어선 ‘입장, 신념, 의지’의 총합이다. 이는 지식에 가치(방향)를 부여하고, 감정을 지속적인 열정(에너지)으로 승화시킨다. 여기서 “사상(思想)”은 단순히 ‘생각’이 아니라, 요구와 이해관계를 자각하고 이를 실현하려는 입장ㆍ각오ㆍ결심ㆍ신념ㆍ의지까지 포괄하는 실천적ㆍ의지적 의식을 의미한다.


사상의식은 무의식과 긴밀히 결합해 있다. 사상의식이 확고한 신념으로 굳어지면 이는 무의식의 영역으로 체화되어, 별도의 반성적 사고 없이도 주체의 모든 판단과 행동을 자동적으로 규제하는 ‘인격의 골격’이 된다.


이 세 형태의 관계에서 결정적인 것은 다음의 이중적 규정이다. 첫째, 사상의식과 결합되지 않은 순수한 감정, 순수한 지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식의 내용에 이해관계가 반영되면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사상적 견해가 되며, 감정이 요구와 이해관계를 뚜렷이 표현하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사상감정, 곧 사상의식이 된다. 둘째, 사상의식은 사람들의 의식에서 핵을 이루며 모든 의식 현상의 근저에 놓여 있다. 사상의식에 의하여 사람들의 인식 활동과 심리 활동이 규제된다.


자연계의 운동과 다르게 사람의 모든 활동은 결국 자기 요구와 이해관계를 실현하려고 이루어지기에, 사상의식이 작용하지 않는 활동은 없다. 사람이 눈을 통하지 않고 세상을 볼 수 없듯이, 자기 요구를 자각하고 이를 실현하려는 의지를 발현하는 사상의식을 통하지 않고는 활동할 수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사상의식을 통해 자기가 판단하고 행동한다는 것을 잘 의식하지 못한다. 마치 자신이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을 평소 의식하지 못하듯, 사상의식은 모든 활동의 근저에서 작동하면서도 대개 비반성적으로 작동한다.


3) 사상의식의 보편성: 삶의 현장에서 요동치는 실천적 동력

사상의식은 추상적인 철학적 개념이나 정치 구호가 아니라, 인간의 모든 구체적인 행위를 추동하는 보편적이고 생활적인 개념이다. 이를 통해 인간은 자신의 요구를 자각하고 현실을 변혁한다.


이윤이라는 명확한 이해관계를 실현하기 위해 거래처를 분주히 누비는 자본가의 발걸음이나, 계급적 처지에 대한 자각을 바탕으로 정당한 분배를 요구하며 거리에 나선 노동자의 투쟁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의식의 발현이다. 부동산 분양권을 얻기 위해 밤샘 노숙을 마다하지 않는 이들의 집요함이나, 자녀의 사회적 지위와 교육의 상관관계를 통찰하고 사교육에 열중하는 학부모의 헌신 또한 각자의 요구를 실현하려는 사상의식의 투영이다. 이처럼 인간이 자신의 삶에서 보여주는 모든 능동적인 움직임은, 그 지향하는 가치의 정당성 여부와 무관하게, 자기 이해관계를 자각하고 실천하려는 사상의식의 치열한 작용 결과다.


결국, 투쟁이든 사업이든, 사람을 충동하고 추동하는 근본 요인은 절박한 요구에서 비롯되며, 그런 활동을 밀어가는 힘 역시 이해관계에 대한 높은 자각에서 나온다. 열의와 열정은 높은 자각의 산물이다. 사상의식은 의식적 차원에서는 ‘결심’으로 나타나고, 무의식적 차원에서는 ‘습성’과 ‘태도’로 정착하며, 정서적으로는 ‘열정’으로 표출된다. 사람의 사상의식의 상태와 수준의 정서적 표현이 바로 사람 마음의 실체인 것이다.



4.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의식의 사회적 기원과 물질적 토대


1) 의식의 사회적 기원: 야생 아이 사례가 던지는 질문


의식이 사회적 노동과 언어의 산물이라면, 사회적 관계에서 격리된 인간은 어떠한가? 이 물음에 대해 역사적으로 보고된 ‘야생 아이(feral child)’ 사례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만 이 사례들은 대부분 검증의 한계를 안고 있으므로, 어떤 사례를 논거로 사용하든 그 한계를 솔직히 인식해야 한다.


아말라와 카말라 사례는 오랫동안 대표적인 야생 아이 사례로 인용되었으나, 오늘날에는 그 진위에 대해 강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프랑스 연구자 세르주 아롤(Serge Aroles)은 2007년 저서에서 싱 목사의 일지와 사진 자료가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며 이 사례를 날조로 결론지었다. 애슐리 몬터규 역시 초기부터 증거가 빈약하다고 비판했으며, 현대 연구자들은 카말라가 자폐 스펙트럼 장애나 레트 증후군 같은 신경발달장애를 지녔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따라서 이 사례는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 신빙성이 낮은 보고 사례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만약 카말라의 상태가 사회적 격리의 결과가 아니라 선천적 신경발달장애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이 사례로부터 “사회적 관계의 부재가 인간 의식의 발달을 제약한다”는 명제를 도출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성립하기 어렵다. 따라서 카말라 사례는 역사적 참고 자료로만 다루고, 보다 엄밀하게 검증된 사례를 주된 논거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의식의 사회적 기원에 대한 보다 확실한 논거는 미국의 ‘지니’ 사례에서 찾을 수 있다. 지니(본명 수전 와일리, Susan Wiley)는 1957년에 태어나 1970년에 사회복지 당국에 발견된 아이로, 약 20개월 때부터 13세 무렵까지 아버지에 의해 작은 방에 감금되어 거의 모든 사회적 접촉과 언어적 자극에서 차단된 상태로 자랐다. 발견 당시 그녀는 언어를 거의 구사하지 못했고, 걸음걸이는 토끼처럼 뛰는 형태였으며, 체중은 겨우 27kg(59파운드)에 불과했다.


지니의 사례가 카말라 사례보다 학술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이유는 명확하다. 발견 이후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NIMH)의 지원하에 언어학자, 심리학자, 의료진 등 다학제적 연구팀이 체계적으로 관찰하고 기록했기 때문이다. 언어학자 수전 커티스(Susan Curtiss)의 연구에 따르면, 지니는 발견 후 약 7개월 만에 200개 이상의 어휘를 습득했으나, 문법과 통사 구조의 습득에서는 끝내 정상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 결과는 에릭 레너버그(Eric Lenneberg)의 ‘결정적 시기 가설(Critical Period Hypothesis)’, 곧 언어 습득에는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임계기가 존재한다는 가설과 부합하는 것으로 널리 해석되었다.


인간의 유전자와 뇌 구조를 완벽히 갖추고 태어났음에도 사회적 관계에서 격리된 아이가 인간다운 의식을 발달시키지 못했다는 사실은, 의식의 본질에 대해 준엄한 교훈을 준다. 뇌라는 ‘하드웨어’가 존재하더라도, 사회적 관계라는 ‘운영 환경’이 결여될 때 인간적 사유는 불가능하다.


격리 아이가 가장 어려워했던 언어 습득은 단순한 소통의 부재를 넘어선다. 언어는 추상적 개념을 고정하고 시간적 전망을 가능케 하는 의식의 물질적 형태다. 이 사회적 전달망에서 소외된 아이에게 세계는 그저 적응해야 할 물리적 환경일 뿐, 변혁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소련 맑스주의 철학자 일리엔코프(Evald Ilyenkov)가 지적했듯, 의식은 ‘사회적으로 규정된 도구의 사용’을 통해 형성된다. 노동 도구를 쥐고 자연을 변혁하는 실천 속에서 인간은 비로소 ‘세계는 변할 수 있다’는 주체적 자각을 얻는다. 사회적 노동이라는 실천적 고리가 끊긴 뇌는 사회적 자아를 형성하지 못하고 고등 동물의 심리 단계에 고착될 수밖에 없다.


이 사실은 앞서 구분한 의식의 형태론과 정확히 대응한다. 야생 아이에게 감각(제1신호계)은 존재했다. 감정의식의 원초적 형태(공포, 허기)도 존재했다. 그러나 언어를 매개로 한 제2신호계가 형성되지 못함으로써 개념적 사고(지식)로의 이행이 차단되었고, 무엇보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기 요구와 이해관계를 자각하는 사상의식은 발생할 수 없었다. 이것은 의식의 사회적 본질을 가장 극적으로 증명하는 사례다.


2) 의식의 내용을 규정하는 물질적 토대

의식은 고도로 발달한 물질인 뇌의 기능이자, 사회적 노동과 언어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의식의 구체적 ‘내용’은 무엇이 규정하는가? 맑스는 이렇게 정식화했다: “인간들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들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정한다.”(맑스,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서문)


이 명제는 의식의 내용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는 물질적 조건, 곧 생산력의 수준, 생산관계의 성격, 사회적 관계의 총체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을 뜻한다. 역사적으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 원시 공동체: 낮은 생산력으로 인해 협동이 생존의 조건이었던 시대, 의식의 중심은 평등과 공유였다.

• 계급 사회: 잉여 생산물의 발생과 함께 등장한 지배 계급은 사적 소유와 신분 차별을 ‘자연의 질서’나 ‘신의 뜻’으로 포장하는 이데올로기를 구축했다. 맑스와 엥겔스는 이렇게 요약했다: “지배 계급의 사상은 어느 시대에나 지배적 사상이다.”(≪독일 이데올로기≫)

• 자본주의와 프롤레타리아 의식: 자본주의의 모순 속에서 노동자들은 자신의 고통이 개인적 불운이 아니라 구조적 착취임을 자각한다. 여기서 싹튼 노동계급의 의식은 자본의 논리에 저항하는 능동적 사유로 발전한다.

소결. 지금까지의 논의는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유물론의 제1 명제를 확립했다. 그러나 만약 논의가 여기서 멈춘다면, 의식은 존재의 수동적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 되고, 인간은 환경에 순응하는 동물적 존재로 전락하며, 역사를 변혁하는 실천의 근거가 소멸한다. 변증법적 유물론의 핵심은 바로 이 지점에서 제2명제, 곧 ‘의식은 존재에 능동적으로 반작용한다’는 명제로 이행하는 데 있다. (이어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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