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국가주의를 넘어서자


본문
이현숙
한국경제?
<자주시보>는 다음과 같은 기사를 싣고 있다.
‘트럼프위협저지공동행동(준)’이 8일 오후 2시 주한 미국 대사관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일방적인 관세 정책을 “깡패식 협박”, “경제 수탈”로 규정했다. ...
이태환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은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그대로 관철된다면 한국 경제의 바탕은 물론이고 노동자들의 일자리, 고용과 근로 여건은 대단히 악화될 것”이라며 “민주노총도 생존권을 위해서, 노동자들의 고용을 위해서라도 힘차게 투쟁하겠다”라고 말했다....
트럼프위협저지공동행동(준)은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일자리·먹거리·안보 위협을 저지하기 위해 진보당, 자주통일평화연대, 한국진보연대, 민주노총,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등이 모여 만든 단체이다. 지난 6월 18일 발족했다.(김영란기자, <자주시보>, 2025.7.8.)(이하 강조는 모두 인용자의 것)
민주노총은 “한국 경제의 바탕이 대단히 악화될 것”이라고 걱정한다. 그런데 그토록 염려하는 “한국 경제”란 어떠한 경제인가. 임금노예제도인 자본주의 경제인가? 아니면 노동자가 주인인 사회주의 경제인가?
“민주노총도 생존권을 위해서, 노동자들의 고용을 위해서라도 힘차게 투쟁하겠다”고 한다. 임금노예로서 “생존”하기 위해, 임금노예로 “고용”되기 위해서, 착취당하기 위해서, 자본가의 천년왕국을 위해서, 힘차게 투쟁하겠다는 말인가!
국익, 주권자 국민?
트럼프위협저지공동행동(준)의 기자회견문을 보자.
[기자회견문]
트럼프의 한국에 25% 관세 위협 규탄한다!
이재명 정부는 주권자 국민을 믿고 당당히 나서라!
이재명 대통령은 국익 중심을[의] 실용외교를 통해 글로벌 경제, 안보 환경의 대전환의 위기를 국익 극대화의 기회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
이재명 정부는 주권자 국민을 믿고 당당히 맞서라
윤석열의 내란과 계엄세력에 맞서 6개월간 주권자 시민들의 항쟁과 연이은 대선을 통해 탄생한 이재명 국민주권정부에게 요구한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거대한 패권 국가인 미국에 끌려다니는 것이 아닌 경제, 일자리, 먹거리, 안보 주권을 지키는 것이다. 미국에 당당히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와 국회, 국민이 함께 나서 공동으로 대응해야 한다. 야 5당과 시민사회는 12월 3일 계엄부터 4월 4일 파면까지 123일 동안 응원봉으로, 선결제로, 온라인 서명으로 함께 했다. 이재명 정부는 주권자 국민을 믿고 당당히 맞서라
2025년 7월 8일 트럼프위협저지공동행동 준비위원회 ([ ] 속의 첨가는 모두 인용자의 것)
트럼프위협저지공동행동은 이재명에게 “주권자 국민을 믿고 당당히 맞서”서, “국익극대화”를 위해서 투쟁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이 주권자, 즉 권력의 주인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두 개의 국민, 적대적 두 개의 국민이 있다. 착취‧억압당하고, 무권리 혹은 허울뿐인 주권을 가진 노동자‧민중 국민이 있다. 그리고 부와 권력을 독차지한 진정한 주권자인 자본가 국민이 있다. 주권자인 자본가 국민을 믿고 미국에 맞서라고, 이재명에게 요구하는 것인가?
국익, 즉 국가의 이익이란 무엇인가. 국가는 누구의 국가인가? 노동자 민중의 국가인가? 아니면 자본가 국가인가.
그래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국민주권정부”는 단지 자본가 국민주권정부일 뿐이다. 자본가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는, 그 주권자인 자본가 국민이 나서야 한다. 우리는 당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트럼프와 싸울 이유가 없다. 노동자‧민중 국민은 노동자‧민중의 국가를 위해서,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서 투쟁할 뿐이다.
자주권이란 무엇인가
위의 <자주시보> 기사를 좀 더 보자.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는 “트럼프가 보낸 서한의 내용은 대등한 주권국가 간의 서한이라고 도저히 볼 수 없는 거의 깡패가 위협하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박석운은 한국과 미국의 관계를 “대등한 주권국가” 사이의 관계라고 전제하고 있다.
한편 “현장실천 사회변혁 노동자전선” 홈피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보인다.
독점자본, 금융자본의 등장과 과두제, 자본수출, 국제적 독점자본의 출현과 영토적 분할과 재분할이라는 레닌의 제국주의 5대 표지에 근거해서라도 미국은 하나도 빠짐없이 그에 부합한다고 하겠다. ...
필자는 레닌이 밝힌 제국주의 5대 표지와 더불어 제국주의 유무를 논하는데 핵심은 타방(국)에 대한 자주성 침해, 유린의 유무라고 생각한다.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현장과 광장 11호에서 폭로하는 한미관계를 보면 명확하다.
미국은 폭력적 핵을 앞세운 군사력과 폭력적 기축통화인 달러를 양대 축으로 각종 정치, 경제, 군사 기구를 결성하고 세계 도처에 미군기지 배치로 타방(국)의 자주성을 심각히 유린해 왔다. 조작과 날조, 착취와 억압, 폭력을 동반한 자주성의 침해 유무가 제국주의 판단의 핵심이라 판단한다. ...
한국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 민족을 정치, 경제, 군사, 문화적으로 침탈하고 장악하여 자주성을 심각히 유린하는 제국주의 국가다. (강은수 노동조합 활동가, “자주성을 기준으로 정세를 보는 눈이 이론과 실천을 바로잡을 것이다.”)
강은수는 한미관계에서 한국이 자주국가[자주: 남의 보호나 간섭을 받지 아니하고 자기 일을 스스로 처리함]가 아니라고 한다. 미국이 한국의 자주성(주권)을 유린하고, 그래서 미국을 제국주의라고 한다. 한국이 주권국가임을 전제로 하는 박석운과 강은수는 다른 것 같지만, 사고의 토대는 같다. 박석운은 한국이 주권국가이기 때문에, 트럼프와 싸우자고 한다. 강은수는 자주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자주국가를 목표로 싸우자고 한다. 주권국가(혹은 자주국가)가 그들 사고의 기둥이다. 이른바 국가주의이다.
그런데 어떤 자주성인가? 한국 노동자‧민중의 한국 자본가계급‧자본가국가에 대한 자주성인가? 한국 노동자‧민중의 미제국주의(미국 자본가계급‧자본가국가)에 대한 자주성인가? 한국자본가‧자본가국가의 미제에 대한 자주성인가?
필요한 자주성은 이것이다; 한국 노동자‧민중의 한국 자본가계급‧자본가국가에 대한 자주성. 한국 노동자‧민중의 미제국주의에 대한 자주성.
그리고 연대할 대상은 미국의 노동자‧민중이다. 이른바 노동자국제주의이다. 한국과 미국의 노동자‧민중이 연대하여, 한국과 미국의 자본가계급‧자본가국가와 투쟁하는 것이다. 이것이 반제‧반미투쟁이다. 절실한 것은 세계노동자‧민중의 세계 자본가‧자본가국가에 대한 자주성이다.
그런데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위의 성명서를 보자. “이재명 정부는 주권자 국민을 믿고 당당히 맞서라, 정부와 국회, 국민이 함께 나서 공동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한다. 한국자본가‧자본가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노동자‧민중이 피를 흘리자는 호소이다. 노동자‧민중의 자주성을 말살하고, 저들에게 종속시키자는 주장이다. “야 5당과 시민사회는, 2월 3일 계엄부터 4월 4일 파면까지 123일 동안 응원봉으로, 선결제로, 온라인 서명으로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노동자‧민중의 헌신적 투쟁으로: 인용자] 함께 했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죽 쒀서 개 준 것이 이번 뿐인가? 저들은 또다시 노동자‧민중을 한국 자본가계급의 총알받이로 미제와의 투쟁에 내몰고 있다. 자본가 국가는 자본의 목숨을 애걸하면서, 노동자‧민중의 피를 미제에게 헐값으로 팔아넘길 것이다.
국가와 사회
국가주의에 매몰되어 적과 아를 구분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국가에 대하여 맑스는 <고타강령비판>에서 다음과 같이 쓴다.
자유는, 국가를 사회의 상위에 있는 기관으로부터 전적으로 사회에 종속된 기관으로 바꾸는 데에 있는 것...
현존하는 사회를 현존하는 국가의 토대로 취급[해야 한다] ... (p. 159)
“국가”라고 하는 말로써 실제로는 정부기구를, 즉 분업에 의해서 사회로부터 분리된 독자적인 [권력] 기구를 형성하고 있는 한에서의 국가를 의미[하고 있다] (p. 162) (칼 맑스, <공산당 선언>, 채만수 역, 노사과연, 2022.)
국가와 사회를 분리하여 사고해야 한다. 우리는 은연 중에 국가를 사회와 동일어로 사용한다. 그래서 사회를 위해서,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투쟁한다고 하면서, 자칫하면 국가를 위해서, 자본가 국가를 위해서 투쟁하는 심각한 오류를 범하게 된다.
국가란 적대적 계급사회가 낳은 “정부기구, 권력기구”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국가란 지배계급의 권력기구, 즉 자본가계급의 국가이다. 자본가계급의 국가와 투쟁하는 것만이, 노동자‧민중의 이익을 위해서 투쟁하는 것만이,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투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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